그리움보다 낯선 사랑/♥아름다운 동행

오늘/심재휘 詩ㅣ오랜 방황의 끝/김태영 노래ㅣ그리움보다 낯선 사랑

Blue 탁이 2017. 9. 17. 12:27

 

오늘

 
심재휘

 

 

한 그루의 느티나무를,
용서하듯 쳐다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
나는 얼마나 행복한 것이냐

 
저녁이 되자 비는 그치고
그 젖은 나무에도 불이 들어온다
내가 마른 의자를 찾아 앉으면
허튼 바람에도 펼쳐진 책이 펄럭이고
몇 개의 문장들은 사방으로 흩어진다 그러면
길 위에 떨어진 활자들 서둘러 주울 때
느닷없이 다가와 말을 거는
수많은 어둠들

 
저 느티나무 밑을 지나는 오래된 귀가도
결국 어느 가지 끝에서 버스를 기다릴 테지
정류장에서 맞이하는 미래처럼
서로 닮은 가지들의 깜박거리는 불빛 속마다
조금씩 다른 내가, 조금씩 다른 표정으로
앉아 있을 테지, 벗겨도 벗겨도 끝내
속내를 보여 주지 않는 오늘들

 
그런 것이다
생의 비밀을 훔쳐본 듯
내게로 온 투명한 하루가, 서서히
그러나 불치병처럼 벗겨지는 풍경을
홀로 지켜보는 일에 대하여, 단지
우리는 조금 쓸쓸해지면 그만이다

 

시집<적당히 쓸쓸하게 바람부는>(문학세계사)중에서
 
담아준 님ㅣ2014/5/7ㅣ벨 에포크

 

위날짜에 '벨에포크'님께서 신청곡과 함께 베테랑 남성 시제이 '그날처럼'님께 올렸던

조금은 씁쓸하고 자조적인 고독이 강하게 깃든 심재휘 시인님의 '오늘'입니다.
함께 감상하시는 시간이 되시길 바래요.간만에 무리해서 밤샘 작업을 하던중에
너무 피곤하고 졸려서 집에 들어가려다나도 모르게 블로그에 발길을 했는데
포스팅을 작성하게 되었습니다.

=============================================================================================

위 글은 2015.07.29 07:16 마왕 신해철의 절망에 관하여를 포스팅 할 당시에
덧붙였던 부연 설명과 심재휘'님의 시인데...
좋아하는 시와 음악 파티션안에 새 글로 등록합니다.

 

요즘 점점 체감적으로 짧아지기만 하는 가을을 잡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몸부림을 치는것 같습니다.

운동하기에도,풍광을 감상하기에도,글을 쓰기에도, 그림을 그리는 것에도...

한 순간도 놓치기 싫은 유동적인 자연현상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액자속 풍경처럼 홀드 시킬 수만 있다면 그대로 정지 시켜놓고 싶은 풍경들...

금방 쏟아낸 굳지 않은 선홍빛 핏방울 처럼 새빨갛게 익어가는 잎사귀들...

전부다 가지고 싶은 욕심에 주야로 강행군을 해 왔습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듯이 이 좋은 가을날도 수면후여야 좀더 깊이 느낄 수 있을 듯 합니다.

일단 자고나서 어떤 방법으로 가을을 좀더 묶어 둘까를 고민해봐야겠습니다.

다녀 가시는 모든 님들께 행운이 따라주기를 기원하며...

감사합니다.

 

 

오랜 방황의 끝/김태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