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람의 지문/이은규 詩
먼저 와 서성이던 바람이 책장을 넘긴다
그 사이
늦게 도착한 바람이 때를 놓치고, 책은 덮인다
다시 읽혀지는 순간까지
덮인 책장의 일이란
바람의 지문 사이로 피어오르는 종이 냄새를 맡는 것
혹은 다음 장의 문장들을 희미하게 읽는 것
언젠가 당신에게 빌려줬던 책을 들춰보다
보이지 않는 지문 위에
가만히, 뺨을 대본 적이 있었다
어쩌면 당신의 지문은
바람이 수놓은 투명의 꽃무늬가 아닐까 생각했다
때로 어떤 지문은 기억의 나이테
그 사이사이에 숨어든 바람의 뜻을 나는 알지 못하겠다
어느 날 책장을 넘기던 당신의 손길과
허공에 이는 바람의 습기가 만나 새겨졌을 지문
그 때의 바람은 어디에 있나
생의 무늬를 남기지 않은 채
이제는 없는, 당신이라는 바람의 행방을 묻는다
지문에 새겨진
그 바람의 뜻을 읽어낼 수 있을 때
그때가 멀리 있을까,
멀리 와 있을까
2014년 03월 18일 '그대만의 모닝' 올림

시나 글은 어쩌면 음악과 닮은꼴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입니다.
타이밍이 엇갈리면 아무리 좋은 노래도 치명적일 때가 있습니다.
문상가서 축가를 부른다면 아무리 좋은곡으로 뛰어난 가창력을 보인다 해도 엄청난 빈축을 살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결혼식장에서 구구절절한 장송곡을 부른다면 그또한 온몸의 뼈를 온전히 보존하긴 힘들겠지요.
시든 글이든 음악이든 가장 큰 효과를 얻기 위해서는 타이밍이 중요한데....타이밍이란 순발력과 준비된 학습아래
발휘가 되는 것이지 불난집 강아지처럼 손발만 바빠서는 어떤 효과도 얻어내기는 힘들겠지요.
경우에 따라서는 간장을 녹일듯한 애절한 고백보다 한곡의 노래, 단 한줄의 시가 사람의 마음을 더 많이 감흥시키고
움직임을 줄 때가 있을거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요즘의 젊은 사람들은 우리때와는 다르게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언제 어느때든 방문 할 수 있는 미니 홈피, 내키면 그 즉시 확인 가능한 휴대폰.....
이처럼 화려한 문명의 이기 앞에 노출된 우리는 점점 인내에 대한 저항력이 약해져서 서서히 병들어 가고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 툭하면 자살하고,상심하고 하는것은기다림이란 절차없이 쉽게 모든것을 확인 할 수 있기에
순환이 막히는 그 순간을 이겨 낼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나의 젊은 시절은 어차피 기다림에 익숙하지 않으면 온전하게 살아 갈 수가 없었습니다.
급한 전화 한 번 사용하려면, 부지런히 이장댁에 발품을 팔아야했으며
주인집 마루를 거쳐야만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시대였기 때문이었지요.
두근거리는 가슴으로 우체통에 편지를 넣고 나면 등기로 붙여도 2~3일이란 기간이 소요되었고
그나마도 제대로 받아 보기나 했는지 확인하기도 쉽지가 않았어요.
답장을 받는것만이 유일하게 확인 하는 방법이었는데 그렇기에 기다림이 더욱 애틋했고,간절했었는지도 모르지만
또 그러하기에 인내와 기다림이란 지혜를 습득했는지도 모릅니다.
과연 이대로가 좋은것일까...
지금도 내 몸 반경 1M내에 있는 휴대폰...
이젠 백과 사전도 필요없고 전자우편을 확인하기위해
급하게 PC방을 찾을 필요도 없습니다.
하지만,
뭔가가 부족합니다.
뭔가가 갈증을 느끼게 합니다.
사라져간 그리움,기다림,설레임,간절함,애틋함,안타까움.....
어떤날은 내 자신이 컴퓨터가 되어가는 착각을 합니다.
고성능의 CPU를 대신 할 수 있는 머리면 족하고 정보를 많이 주워 담을 수 있는
하드용량의 대뇌를 꿈꾸고 사람들에게 많이 발휘해 보이고 싶은 메모리를 갈망합니다.
내 영혼이 담겨있는 가슴은 항상 뒷전....
내 젊은날은 사람들에게 환상을 갖지않기 위해 언제나 경계하고 마음을 다잡아야 했었지만,
요즘의 나는 사람들에게 환상을 가져보기 위해 오히려 안간힘을 쓸때가 있습니다.
즉시 펼칠 수 있는 현대문명이란 바이러스가 나의 잠재된 낭만과 사랑과 꿈을 갉아 먹은것 같아요.
좋은시와 글을 찾아,좋은곡을 찾기위해 목적지없는 방랑길을 겉도는 나의 모습에서 한가닥 희망의 빛을 봅니다.
이상향을 미리 포기하고 주저앉기보다는 꿈꾸다 갈 내 모습이 덜 불행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바람기억/나얼
NAUL(나얼) - Memory Of The Wind(바람기억) MV
'그리움보다 낯선 사랑 > ♧나의 인생 메모' 카테고리의 다른 글
추억은.../불루 탁이ㅣ주희/연인ㅣ봉천동 달동네 에피소드ㅣ살아야 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다 (0) | 2017.09.07 |
---|---|
추억이라는 말에서는.../이향아ㅣ전람회(김동률)-기억의 습작 (영화 건축학개론 OST)ㅣ그리움보다 낯선 사랑 (0) | 2017.08.31 |
가고 오지 않는 사람이 있다면/김남조ㅣAm I that easy to forget / Jim Leevesㅣ그리움보다 낯선 사랑 (0) | 2017.07.27 |
나그네/안도현ㅣ바비킴/고래의 꿈(원곡&국악버전)ㅣ그리움보다 낯선 사랑 (0) | 2017.06.21 |
PSY 싸이/예술이야ㅣ서해/이성복 時ㅣ안양천 벚꽃길...ㅣ그리움보다 낯선 사랑 (0) | 2017.04.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