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면들"
- 장석주 지음 -
백억 년 전에 나는 어디에 있었는지
모릅니다. 잘 계시죠? 요즘은 허리가 불편해서
안성 황한의원에서 추나요법 치료를 받았어요.
수련이 피었네요. 지구에는 개구리비도 내린다는군요.
골반 뼈가 틀어진 건 나쁜 자세 때문이랍니다.
고래 떼가 왜 해안가에 몰려와 죽는지를 알 수가 없습니다.
진주는 어디서나 반짝이고 침대 밑에는
먼지들이 솜뭉치처럼 굴러다닙니다.
비 온 뒤 느티나무 잎사귀에서 수천 물방울들이
편종처럼 쟁, 쟁, 쟁, 맑은 소리를 내는군요.
아침엔 고등어구이를 먹었어요.
당신이 보고 싶었던 적은 없었어요.
모닝커피는 쓰군요.
낮엔 활엽수림 속에서 마야코프스키를 읽었습니다.
작년의 청설모들이 머리 위로 날아다녀요.
오늘은 우편물이 없었지요.
그 어떤 책도 읽고 싶지 않아요.
골담초엔 노란 꽃들이 피었어요.
낮엔 기온이 섭씨 30돕니다.
벌써 망종이라는군요.
모자를 쓰고 지나가다가 풀덤불 아래에서
뱀이 우는 소리를 들었어요.
해질녘엔 중부고속도로를 달렸어요.
폐광 도시의 하천에는 아직도 검은 물이 흐릅니다.
광부들이 떠난 空家에는 헌 운동화와
초등학교 교과서들이 글러다니데요.
그 사택에 살던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요?
운동회가 다 끝나 어둑어둑해질때까지
식구들은 아무도 오지 않았어요.
소년은 울며 자나무 옆을 지나 집으로 걸어왔어요.
미국 출장에서 돌아온 그날 김포공항에서
외할머니가 세상을 뜨셨다는 소식을 받았어요.
천천히 썩어가며 내뿜는 사과 향내가 좋아요.
냄새는 기억의 끄나풀이죠.
된서리가 내린 뒤 겨울 내의를 꺼내 입었죠.
해가 짧아지는군요. 주말엔 탄광지대에 있는
카지노엘 다녀왔는데, 우연히 만난 옛날 친구에게
칩 몇 개를 건네줬지요.
아버지의 다섯 번째 기일이 지났군요.
어제는 여성 소설가를 만났는데 채식주의자라고 하더군요.
죄의식은 없었어요.
냉장고의 우유는 유통기한이 지나 버렸어요.
서산 천장암 암자에는 한 달 간 머물 예정이에요.
개밥은 어떻게 하죠?
누군가에게 하루에 한 번씩 와달라고 부탁해야겠지요.
개종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습니다.
약간의 복부비만이라고 하네요.
단식이라도 해야 할까 봐요.
무릎 관절에 차오른 물을 빼야 한다는군요.
셋째네서 받는 용돈이 끊겼으니 매달 보내는 생활비를
더 보내라고 하네요.
밤엔 라마승이라도 되어 맨발로 떠도는 생에 대해 생각했어요.
그들은 새벽 들판으로 나갔어요. 까마귀들이 하늘을 덮고 있군요.
동이 틀 무렵 페데리코는 쓰러졌어요.
우리는 참 멀리 왔습니다.
밤에는 숲 속에서 들고양이들이 사납게 울어댑니다.
설마 그걸 몰랐다고 시치미를 떼지는 않겠지요?
딸꾹질이 자꾸 납니다.
횡격막 아래에 모호한 통증이 있습니다.
지금 산림욕장까지 산책하러 나갑니다.
부디 찾지 마세요.
그래도 여덟 살까지는 행복했어요.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그 많던 두꺼비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요?
백억 년 전에 당신은 어디에 있었나요?
- 同詩集에서, -
고래의 꿈/바비 킴 <Bobby Kim -Whale's dream>
요즘들어 활동을 왕성하게 하고 계시는 벨에포크님이 발췌하여 올려주신
장석주님의 시로 만든 포스팅입니다.
원래는 새벽녘에 퇴근해서 완성한 Gif이미지와 시를 옮겨적은 이미지였는데,
무슨 문제인지는 몰라도 이미지가 잘 올라가질 않더군요.
너무 졸립기도 하고......
그래서 다음 기회에 올리기로 하고 저장만 해놓았었는데...
회사 복도가 너무 고요해서 이상하다 했더니
복도에 공지 붙여 놓은것을 못 보았더군요.
회사가 속한 건물 전체가 왁스 청소를 하는 날이었던 모양인데...
왁스 청소하는 아줌마들의 목소리가 보통이 넘지요.
멸공 웅변대회 연사 출신들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발자국 한 번만 잘못 찍혔다하면 영락없이 벼락이 떨어집니다.
나처럼 모르고 출근했던 사람들의 대부분이 가까운 테이크 아웃으로
쫒기듯이 피신해 갔는데
두 시간 정도 소요되는 시간이 너무 지루 할것 같아서 잠깐 집에 들렸습니다.
그럴 시간에 차라리 미뤘던 포스팅이나 올리자는 심산이었습니다.
고래의 꿈,
고래는 과연 어떤 꿈을 꿀까요?
바다 생물중에 유일하게 포유류이면서 가장 몸집이 큰 동물,머리가 사람 다음으로 좋다는 고등동물...
뇌파로 서로가 소통한다는 신비스러운 동물...모든 바다 동물중에서 유일하게 초식동물 종이 속한 동물...
실제로 몸집이 큰 고래일수록 주로 플랑크톤을 주먹이로 삼고 있다죠.
상어보다 몸집이 훨씬 크지만 고래들의 위협성은 아직 기록되지 않고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한 고래는 과연 어떤 꿈을 꾸며 살아 갈까요?
바다 저 끝 어딘가를 가다보면 정말 그 고래는 날 알아 볼까요?
아니면,
고래인 나를 그가 알아 볼 수 있을까요?
몇 년전에 처음으로...내 소신과 금기를 저버리고 어딘가에서 떠나 갈 때 작별의 인사를 했던 적이 있습니다.
내가 머물렀던 적이 없음으로 난 사실 떠난다는 말에 어폐가 있긴 합니다.
바람처럼 잠시 머문적은 있지만 어디에도 뿌리를 내려 본 적이 없기 때문에...
그래도,
인사 정도는 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누군지도 잘 모르는 사람한테...
인사는 너무나 간단했습니다.내 심경을 담은 짧막한 자작시 한 편...
그리고,
"그동안 감사했습니다"가 내 작별 인사의 전부였습니다.
"감사합니다"가 아닌 "감사했습니다"란 과거형이 하나 쓰였을 뿐인데,
그가 말했습니다.
과거형은 싫다고,안녕이란 말은 싫다고...
나도 그녀를 몰랐지만, 그녀는 나를 더 몰랐었을텐데......
그는 만류하는 대신 이 말을 내게 해주었습니다.
"언제든 다시 생각 나면 찾아 오라고
그러면 반갑게 맞이 해줄거라고 언제든 오고 싶을 때 ....
고래가 나를 알아 본건지 고래였던 나를 알아 본건지...
나는 그날 이후로 어떤 자리에서건 떠나 갈 때에는 떠난 다는 말을 한적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진정으로 떠나 본 사람은 압니다.정말로 떠나 가는 사람은안녕이란 말조차 하지 않습니다.
그냥 조용히 사라져 갈 뿐입니다.
먼 바다에서 물을 뿜는 고래를 알아본 그 때문이었을까.....
난, 두 번다시 발길을 하지 않기로 했던 그곳에
네 계절이 지나고 나서 다시 찾아 갔습니다.
아직 물속에서 그 형체를 드러내기도 전에 단지 분사되는 물줄기만으로 고래를 알아보았던 그...
서로가 말은 안했지만,그가 날 알아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나...
그가 날 알아본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를 알고 있던 그...
고래의 꿈이란 그런것이 아니었을까...
드넓은 바다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닮았습니다.그 넓은 바다에서 어떻게 알아 볼까 싶겠지만,
꿈이 닮은 사람들끼리는 알아 보는것 같습니다.
지금쯤 느긋하게 회사에 가면 복도의 왁스가 광을 내면서 잘 말라 있겠네요.
꿈결처럼 아스라해 지기도 하고,뭔가 태고의 숨결이 목덜미를 스치는듯한
아늑한 그리움이 느껴지는 좋은 시...
벨에포크님 번번히 고맙습니다.덕뿐에 내 포스팅은 풍성해져만 갑니다.
찾아 주시는 모든 님들께 광명같은 행운이 따르길 기원하면서 포스팅을 마칩니다.
<이 글은 2014.11.19 17:41 에 등록 되었되었던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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