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나무 여인숙
장석남
마당에는 살구나무가 한 주 서 있었다
일층은 주인이 살고
그 옆에는 바다 소리가 살았다
아주 작은 방들이 여럿
하나씩 내놓은 窓엔
살구나무에 놀러 온 하늘이 살았다
형광등에서는 쉬라쉬라 소리가 났다
가슴 복잡한 낙서들이 파르르 떨었다
가끔 옆방에서는 대통령으로 덮은
짜장면 그릇이 나와 있었다
감색 목도리를 한 새가 하나 자주 왔으나
어느 날 주인집 고양이가
총총히 물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살구나무엔 새의 자리가 하나 비었으나
그냥 맑았다 나는 나왔으나 그 집은
그냥 맑았다
-제주에서 달포 남짓 살 때 -(시의 부제)/
담아준 님ㅣ2016/01/16 ㅣ15:27:03 벨 에포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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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제에서 알 수 있듯, 이 시는 장석남 시인이 제주에서 달포 남짓 살 때 방을 빌려 쓴,
마당에 살구나무가 한 주 서 있던 여인숙 이야기다.
이야기라고는 했지만 시「살구나무 여인숙」은 구체적인 삶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인의 마음속에 그려진 그림 이야기다.
시적 표현의 중요한 두 가지 방법인 진술과 묘사 가운데 묘사 중심으로 짜여진 시다.
일층은 주인이 살고 그 옆에는 바다 소리가 살았다나, 작은 방들이 하나씩 내놓은 창엔
살구나무에 놀러 온 하늘이 살았다는 게 재미난 시적 표현이지만,
파리똥이 묻은 낡은 형광등에서 나는 쉬라쉬라 소리와 대통령으로 덮은 짜장면 그릇이 더 재미나고
여인숙의 풍경을 우리에게 잘 보여준다.
주인집 고양이가 총총히 물고 간 감색 목도리를 한 새는 시적 화자의 분신이 아닐까?
나는 나왔으나 그 집은 그냥 맑았다 한다.
딱딱한 단정의 종결형인 “-었다”의 거듭되는 반복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온통 서정의 물빛으로 흥건하다.
시를 쓰는 시인의 손바닥에 서정의 먹물이 가득한 것만 같다. 나는 그렇게 밖에 말할 수 없다.
-시에 대한 해부가 너무 맘에 들어서...<다음에서 펌>
살구꽃 핀 마을은 어디나 고향같다
만나는 사람마다 등이라도 치고지고,
뉘집을 들어서면은 반겨 아니 맞으랴.
바람없는 밤을 꽃 그늘에 달이 오면
술 익은 초당마다 정이 더욱 익으리니
나그네 저무는 날에도 마음 아니 바빠라.
................이호우'님의 한시 형식에 바탕을 둔 삼행시 '살구꽃 핀 마을'처럼 유명한 시에서도 말하듯이
살구꽃 핀 마을을 지나칠 때면 고향의 아늑함과 친근함, 그리고 아득히 몰려드는 향수를 느낄 수가 있는데...
살구꽃은 봄에 피는 꽃이고 봄에 피는 꽃들은 대게가 형태를 한 눈에 구분하지 못할 만큼 비슷하게 생겼습니다.
복숭아 꽃,살구꽃,앵두꽃,벚꽃 기타 등등의 많은 꽃들이 비슷한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유년기를 바닷가에서 보냈습니다.
바닷가에서 살아 보신 분들은 아마 제 말에 공감을 할 것입니다.
바다의 겉 피부에 햇살이 잘게 부서지며 튀어 오르는 빛의 파편들에 눈이 부셔
바다를 오래 쳐다 볼 수 없었던 기억...
그리고 어떤 달 밝은 날의 밤바다는 끝없이 펼쳐진 바다의 몸통이
달빛을 들이 마셨다가 다시 토해 내는 바람에
마치 북극의 백야를 연상케 할 만큼 주위가 대낮같이 밝게 느껴졌던 기억...
그 대낮같은 달 밤에 만으로 이루어진 갯벌 어디메쯤인가 주인 없는 살구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유난히 피부가 희였던 임씨네 장손과 망태기를 가지고 살구를 털러 갔었던 기억이 이 시를 포스팅하면서
갑자기 떠 오릅니다.
아무리 애써봐도 생각이 나지 않는 꿈처럼 가물거리기만 하던 기억의 정체가 선명히 깨어납니다.
어차피 주인이 없는 나무였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대낮에 편하게 따러 갔을 텐데...
달밤에 망태기와 장대를 들고 엎드려서 도둑질하듯 다가간 그 살구나무가 미끄러지듯 시야를 열어 주자
눈앞에 펼쳐졌던 서해 밤바다는 해무에 온몸을 적신 채 달빛을 모락모락 피워내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 얼굴이 채 익기도 전에 전학간 친구의 얼굴처럼 흐릿한 기억속...
이미 황토흙에 덮여 사라져 버린 고향의 서해 바다지만,
그래도 내 마음속에는 여전히 그 바다가 전해주던 파도의 기염이 그칠줄 모르고 출렁입니다.
고향은 원래 마음속에 담겨있는 거니까...
김종국 - 별,바람,햇살,그리고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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