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보다 낯선 사랑/♧나의 인생 메모

쿵푸와 나의 인생 그리고... | 이소룡의 하이라이트 액션 모음/Kung Fu Fighting

Blue 탁이 2014. 6. 13. 12:41

<주성치 주연의 소림축구의 흥행으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곡 쿵푸 파이팅과

실베스터 스탤론 주연의 록키 Ost 곡을 이소룡의 하이라이트 액숀과 함께 올렸습니다>

 

 

어릴적부터 인연이 되어

익히게 된 수많은 격투기중에 가장 오랫동안 수련해온

무술이 쿵푸인데요

 

오늘은 쿵푸가

내 인생에 끼친 영향에 대해서 함께 해보려해요

 

쿵푸로 잘 알려진 세 배우가 있습니다.

이소룡(브루스 리),성룡(잭키 찬),이연걸....기타 견자단이나 홍금보 등

정말 많은 유명 배우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이소룡의 명성에 버금가는 쿵푸 스타가 성룡과 이연걸인데

쿵푸를 전문적으로 수련해 온 내가 감히 말 할 수 있는건

이연걸을 제외하면...

쿵푸의 정수를 익혔다고 보기 힘든것이

이소룡과 성룡입니다.

 

이소룡은 정통 쿵푸로 보기 보다는 쿵푸를 기본으로 하여

자기만의 방식으로 격투기를 창안했기 때문에

기본 자세나 공격 방식은 쿵푸와 많이 유사하지만

오로지 격투쪽으로만 비대하게 발전시킨 가공할 무술이고요,

 

성룡은 이미 알려진바대로 곡마단 출신인데....

단련된 기계체조에 쿵푸 동작을 익혀 볼거리가 많은

영화용 무술로 개발한 영화무술로 보시면 될듯합니다.

 

쿵푸 액션 배우 이연걸은 이미 많은 사람들이 아시는 바와 같이 소림무술학교 출신이고

중국 우슈대회에서 수 차례나 우승을 했던 정통 쿵푸인으로 보시면 될듯 합니다.

쿵푸가 마치 몸에 딱 맞는 옷을 입은것처럼 뼛속까지 배어 있을정도로

어떤 자세를 취하든 ...저것이 바로 쿵푸구나...하는 포스가 느껴질만큼

정통 쿵푸가 완벽하게 배어있습니다.

 

나중에는 흥행을 목적으로 볼거리 무술을 많이 추가 하긴 했지만

소림사 시리즈나 황비홍 시리즈에 담긴 이연걸의 액션을 완벽한 쿵푸의 정수로 보시면 될듯합니다.

 

하지만,

영상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이소룡으로 올렸습니다.

 살아 오면서 내가 가장 많이 들은 말중에

 

"넌 도데체 할 줄 아는게 뭐냐?" 와

"넌 도데체 못 하는게 뭐냐?란 납득하기 힘든 

두 가지 질문을 함께

듣는 일이었습니다.

그럴만한 이유가 많이 있지만,

일단은 해병대 복무 시절에 겪었던 에피소드를 들려 드릴께요.

 

어려서부터 친구나 사람들과 섞이거나 함께 어울려서 놀지 못하고

항상 혼자 생각하고,혼자 놀기를 좋아 해 왔기 때문에

그 영향이 너무나 크게 인생 전반에 영향을 주었고.

그 여파가 지금 이 나이까지 이어지고 있는것 같습니다.

 

어쨋든 남과 어울리지 못하다보니

구기종목.....즉, 축구,배구,농구,심지어는 족구까지 단 한번도 해 본적이 없습니다.

안하면 그만이니까 그래도 크게 불편한건 없었지만

 

문제는 해병대에 입대하면서 내게 너무 감당하기 힘든 치명적인 약점이 되었습니다.

 

군발이들이 거의 다 그렇겠지만

특히, 해병대는

사흘을 안자고 무장 강행군을 하고 나서도

족구를 한다고 하면 자다가도 빤스 바람에 뛰어 나가서 신나게 즐기는 군대입니다.

 

입대전에야 뭐 하기 싫으면 안하면 그만이었지만

군대에서는 하기 싫다고 안 할 수 있는 동네가 아니지요.

 

해병대는 타군에 비해서 훈련소 기간이 길기 때문에 (두달 반)

9월말에 입대했기 때문에 실무에 배치 된것은 12월 중순이었습니다.

 

일단 해병대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면 할 말이 너무 많지만

다른 에피소드는 모두 접고

 

족구 시합 때문에 겪게된 인생 역정?만 다루겠습니다.

 

훈련소 때부터 이미 차트 글씨와 그림실력을 인정 받았기 때문에

자대 배치 후에도 행정병 후임으로 중대 본부에 남아 있을 때였는데

 

어느날 족구를 한다고 모두 연병장에 집합하라더군요

해병대는 항상 근무 인원이 모자라기 때문에 다리가 부러지지 않았다면

열외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족구를 하게 되었는데....

대등했던 두 팀이었지만....

내가 끼는 바람에 내가 속한 팀은 완전 참패를 당했고

그후로 나는 졸지에 고문관으로 전락한 쫄병이 되었습니다.

 

"야! 찌질이~

심지어는 "지진아~

병신색히,등신같은 색히,금치산자,한정치산자 등등의 갖가지

욕설과 구타를 당하며 지옥같은 졸병 생활을 해야했습니다.

 

비교적 졸병들에겐 관대했던 중대 선임하사마저

"멀쩡하게 생긴놈이 모자라는것 같으니 작전행정을 인수받기로 한건 취소해야겠어!"

하면서

일반 보병으로 보직을 바꾼뒤 도살 소대라고 소문난 3소대로  추방?이 되었습니다.

 

소대생활도 마찬가지였죠.

해병대에는 인계사항이라는것이 있는데 이미 소대까지 소문이 나서

가장 만만한 샌드백이 되어 일분이 멀다하고 선임들에게 구타와 기합을 받았고

심지어는 이제 막 전입 해온 내 후임들마저 만만히 보고 무시 하더군요;;

 

83년의 겨울은 그렇게 지옥같이 힘겹게 힘겹게 넘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해가 바뀌고 2월이 되자

태권도 도복이 사병들에게 갑자기 지급 되었고

 

해마다 그맘때면 태권도 국기원 심사를 받기 위해

아침저녁으로 시간이 날때마다 태권도 수련(훈련이 맞겠네요)을 시작했습니다.

 

나같은 졸병은 태권도 기본 발차기부터 정권 지르기와 다리찢기였는데

이미 쿵푸로 단련된 몸이라 워밍업 때 다리를 한일자로 찢었더니

한 하사놈이 그러더군요.

 

"가지 가지 한다....이제보니 뼈도 잘못된 병신이었구나"라면서 키득 거리더군요

그놈이 서천 놈이었는데 중대 태권도 조교이기도 했었죠

체고 출신에다가 전공이 태권도였고 이미 국기원 3단 자격증을 가졌기 때문에

중대뿐 아니라 대대에서도 공인된 사범으로 통했습니다.

 

태권도 수련시간에 얼마나 괴롭힘을 당했는지 지금도 소름이 돋을 정도로

그때의 기억이 생생하네요.

 

군대에서 한번 고문관으로 찍히면 어떻게 되는지 그 동네에 다녀 오신 분들은 이해 하실겁니다.

 

어쨋든 드디어 심사하는날...

다찌차가 소대원을 전부 싣고

대대 연병장에 도착하자 하얀 도복을 입은 전 대대원이 득시글 하더군요.

 

잠시후에 사단 심사위원들이 짚차를 타고 도착했고

 

일개 분대씩 일열 횡대로 나가 심사를 받기 시작했습니다.

드디어 내가 속한 조의 차례가 되었습니다.

 

일단 태극 몇장 몇장 그들이 주문하는대로 하고 나서

한명씩 발차기를 시키더군요.

 

앞차기, 옆차기,해축(뒤돌려차기).....

내차례가 되어 주문하는대로 열심히 하고 있는데

갑자기 세 명의 심사관중에 대빵인듯한 준위가 나를 따로 부르더군요.

 

운동 했었나?

옙~!!

무슨 운동 했나?

"쿵푸"를 했습니다.

 

그러자, 그 심사관인 준위가 야릇한 미소를 입가에 지으며 비웃듯 말을 던지더군요.

"아하~그 춤추는 거 하는 운동?"

 

대대 연병장이 갑자기 폭소가 터지며 모여있던 대대원들 모두의 시선이

내게 꽂히고 있다는것이 감으로 느껴지더군요.

 

어떻게 대답해야할지 몰라 우물쭈물 하고 있는데

그 심사관이 나를 그렇게 괴롭히던 그 태권도 조교를 호명하더군요

"야~~이 ()주 하사~~ 심사관 앞으로"(전부터 잘 아는듯 했음)

 

"지금부터 둘이 대련을 시작한다! 대련의 규칙은 없다!

둘 중에 하나가 쓰러질 때까지~~실시~~~!"

 

갑자기 당한 일이라 조금 당황스럽긴 했지만

원래 일반 사제 도장에서도 입관한 신입의 기량을 테스트 할때

흔히 있는 일이라

난 곧 대련 자세를 취했고

 

그 서천놈도 엉거주춤 자세를 잡았는데....

난 아직도 그 서천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습니다.

 

전 대대원이 모두 보는 앞에서 자신의 태권도 실력을 한껏 뽐내고 싶은 욕망과

어떻게 하면 좀더 나를 멋지게 영화의 한장면처럼 뻗게 할것인지를

고민하는것 같더군요.

눈가에 음흉한 미소를 숨기지 못하면서......

 

 

 

대련 스타트를 알리는 심사관의 호루라기가 울리고 나서...

정확히 3초 조금 못 되는 시간에.....

 

그 서천놈은 하늘을 보면서 풀린 눈을 뜨고

자신이 지금 무슨일을 당한지 이해를 못한 채 누워 있었고....

난 내려다 보고 있었지요.

 

태권도가 쿵푸보다 약해서 그랬던건 결코 아니에요.

일단 나를 너무 얕잡아보고 방심한데다가

 

쿵푸와 태권도는 대련 규칙이 달라요.

일단,

태권도는 정식 시합에서는 벨트라인 아래로는 킥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정권지르기 할때도 연타는(오로지 한방)  반칙에 해당됩니다.

 

거기에 비해서 쿵푸는

낮게 차는 발차기가 많아요

그리고 태권도에 없는 손등 공격(풩세이).팔뚝공격(피,캔)

판죽(팔뚝 하박의 바깥근육을 사용하는데 팔꿈치 공격과 비슷)

통천포(중지를 구부려 돌출되게 하고 주먹을 쥔 뒤 돌출된 손가락의 굽은 부분으로 가격)

어깨공격(어깨로 턱을 올려칠때 유용)

손바닥 공격(장)

손가락 네개를 사용해서 상대의 약한 부위 공격(철사장:주로 눈이나 목)

 

그리고 태권도는 주먹으로 안면 가격이 일절 금지 되어 있지만

쿵푸는 직선 지르기(복싱의 스트레이트)로 인중 공격하는것만 금지고

어떤 공격도 가능하답니다.

 

 

호루라기 소리가 들리자마자

왼손등으로 얼굴을 가격하는 척 트릭을 주자(풩)

그 서천놈이 반사적으로 움찔하더군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산토(뒷발을 축으로 쭉 미끄러져 가듯이 돌진) 스텝으로

바짝 붙어서 왼손을 바깥으로 감아 상대의 오른쪽 어깨 도복을 움켜쥐고(루)

오른쪽 발 뒷꿈치로 허벅지를 찍으며 올라타구 나서

관자 놀이를 팔꿈치로 가격(판죽)해 버렸습니다.

 

한 순간에 기우뚱하면서 균형을 잃더니 장엄하게 뻗더군요.

 

신기해하는 심사위원들과 대대 참모들,,,,그리고 연병장에 기립해 있는

모든 해병 대원들이 누가 시킨것두 아닌데

조금씩 모여들기 시작했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심사위원중에 가장 직급이 낮은듯한 상대와 다시 대련을 시키더군요.

 

이미 한 번 눈으로 목격한데다가 순식간에 기습하는 것을 지켜본 탓인지

쉽게 공격해 들어 오지 못하더군요

 

그러다가 태권도의 가장 무서운 공격이라고 할 수있는

앞 돌려차기에 연달아 뒤돌려 차기가 들어 오는 순간

 

난 자세를 낮게 앉으며 두 팔로 땅을 짚고 오른 다리를 쭉 펴서 쓸듯이 회전 시켰습니다(쇼탕 또는 쇼우 탄테이)

심사위원은 곧 넘어졌고 일어 나려는 찰라 왼손의 손바닥을 펴서 장으로 미간을 적중 시켰습니다.

주먹으로 가격 할 수도 있었지만

약간의 인정을 베풀어 장으로 가격한거죠.

그래도 충격이 컸던지 엉덩 방아를 찧으면서 그대로 뻗어 버렸습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태권도 특차로 심사위원으로 발탁되어 해병대에서 그토록 달기 힘들다는

중사로 특진한 전적이 있는 강적이었더군요.

그해 가을에 태권도 국기원 1단 단증

다음해 봄에 2단 단증이 수여되었습니다.

 

그후로 대대에서 나를 보는 눈이 달라졌고

더 이상 고문관 취급도 안하더군요.

 

그리고 그해 유월에 그 당시 어떤 기관이든 반드시 의무적으로 했던 행사....

6.25 웅변대회가 있었는데...

 

난 거기에서 "아버님의 당부"라는 원고의 제목으로 사단에서 대상을 받게 됩니다.

 

지독한 놈들...

대회를 앞두고 있는 전날밤까지 밤샘 근무를 시키는 바람에

해안 근무를 서면서 해안등 불빛에 원고를 외우고 연습 해야 했는데

 

그때 다룬 내용이....

 

"1983년 9월 1일 새벽...뉴욬을 이륙하여 서울로 오던

대한 항공 보잉 747 점보 여객기가

사할린 근해 상공에서 269명의 탑승객 전원과 함게 실종되다"라고 시작되는

 

소련 전투기가 우리나라 여객기를 격추시킨 내용을 다룬 원고였습니다.

대대에서 일등,다시 연대에서 일등,사단에서 일등

사단에서 일주일간 합숙하면서 연습한 후에

 

 

해군본부(그 당시에는 지금의 보라매 공원(공군본부) 옆 대방동이 해군본부였습니다)에서

전 해군,해병 사단 대표들이 결전을 벌였고

난 아쉽게도 같은 해병소속인 연동진 해병(포항,난 김포)에게

일등 자리를 놓쳤는데

원고 내용이 시사성이 강하면서도 자극이 강하더군요

난 성대결절로 고생하느라 대회에 참가한것만도 기적....

 

그당시 내게서 일등 자리를 빼앗아간 사람이 연동진 해병이었는데....

전국대회에서도 대상을 받았습니다.

 

이 포스팅을 올리고 네이버에 검색해봐야겠네요...지금 생각이 나는군요.

그 당시 전우신문,한국일보,조선일보의 사설란에 그와 나의 원고가 실렸었는데....

 

아쉽지만 그동안 받은 표창장과 상패,트루피를 가지고 소대로 돌아오니

소대장이 묻더군요.

 

"야~ 차 아무개야 넌 도데체 못하는게 뭐냐?"

 

넌 도데체 할 줄 아는게 뭐냐로 시작해서

정 반대되는 질문을 받은 것은 단지 군대에서만은 아니었죠.

 

난 혼자 하는건 비교적 뭐든지 다 잘하는 편입니다.

 

글 쓰는것도 혼자 하는거고, 그림 그리는것도,

운동도

수영,달리기,모든 격투기(어차피 같은 근육과 스피드,힘으로 하는거라 이거저거 다 똑같습니다)

*지금(14.6.13.22:51) 귀가해서 읽어보다가 몇 부분을 정정하는 중입니다.

오타도 있고해서요. 참고로 고교때는 2년동안 유도 선수 생활도 했읍니다)

하지만 같이 어우러져서 팀웍을 이루며 하는것은 뭐든지 찌질이입니다.

 

만약,나의 장점이 반대로 적용되었다면....

지금보다는....성공 했겠지요.

 

하지만 어쩌겠습니까

엄마 뱃속에서부터 그렇게 태어난걸....팔자려니 해야겠지요.

 

어쨋든,

나에게 있어서 쿵푸는 나를 반쪽이라도 사람답게 살게 해준

아주 고마운 친구였고 건강 비결이었습니다.

 

요즘도 가끔은....

옛날처럼 날렵하게 동작을 구사 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눈에 띄지 않는 밤공원에 갈 때면

한때 미친듯이 수련했던 쿵푸의 권법을 조심스럽게 시전해 보곤 합니다.

 

하체 운동은 싸이클이나 산악 자전거로 단련하고

상체는 턱걸이를 꾸준히 하면서 근육을 유지해 가고 있습니다.

건강은 소중한거니까요.

 

줄이려고 의식하고 써 내려 온것 같은데도 텍스트양이 장난 아니겠군요.

이것이 나와 쿵푸에 얽힌 뗄 수 없는 사연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제 포스팅을 지금보다는 못 올리겠네요.

내일 부터 톰과 제리를 시작합니다.

한동안 손에 놓았던 그림이라 열심히 해야 할것 같아요.

 

전에 근무하던 회사의 사장하고 제작진들 얼굴 보기가 껄끄러워서

전화기를 계속 꺼놓고 있었는데,

책상에 있는 도구하고 짐을 챙겨 와야 하는데 걱정이 되는군요.

 

아주 안좋은건 알지만....

난 항상 결정하는게 서투른것 같습니다.

뭔가를 결정하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요.

 

그대신 결정하는 순간 부터는 어떤 경우에도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는 않습니다.

 

난 항상 양극을 치달리는것 같아요.

너무 못하거나...비교적 잘 하거나

 

너무 정이 많아서 걱정이다"라고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피 색깔이 궁금하다....너무 야멸차다.

 

..........................................................

언젠가 포스팅에 올린 내용이 있습니다.

난 불자라서 불교 교리 안에서 모든걸 믿고 이해 하는 편이라고

 

누군가를 사무치도록 많이 그리워 하다 죽으면

다음 생에서는 또다시 연이 이어져서

다시 만날 수 있을거라고......

 

하지만, 걱정 되는것이 있습니다.

물론 그럴일이야 없겟지만,

누군가 내가 원치 않는 사람이 나를 그리워 하게 된다면....

 

다음 생에서 그 업으로 악연이 또 이어지겠지요.

나는....

차라리 누군가가 나를 미워하고 증오하더라도

내가 원하지 않는 사람이 나를 그리워 하진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미움이나 증오는 시간이 흐르고 그것을 녹일만한 사랑이 있다면

사라 질 수도 있겠지만

 

그리움이란것은 대체 할 수 있는 방안이 없어 보입니다.

갈 수록 눈덩이처럼 커지는것이 그리움입니다.

 

감당하기 힘든 그리움의 무게로 힘들어 하는 모습보다는

차라리 미움을 받는 내가 되고 싶습니다.

 

 

회사를 옮기는 과정에서 가장 힘들었던것은...

처음으로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게 된 가장 소중하고 친한 친구가

함께 있었던 것인데...

 

회사가 별로 멀지는 않지만,이제 함께 담배를 태우지는 못하겟네요.

난 친구가 많지 않습니다.

많이 사귈 수 있는 성격이 못됨은 이미 글안에 깔려 있을거구요.

 

겨우,사회 친구가 둘 뿐인데....

만 명의 친구가 부럽지 않은 그런 친구들입니다.

 

난 성격상 사람들을 만나지 않기 때문에

한 번 가슴에 각인된 사람은 쉽게 잊지를 않습니다.

의리가 남다르고 강직한 품성이라서기 보다는

 

아무도 만나지 않기 때문에 유지 되는 심성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쨋든,

앞으로는

주말에나 시간이 날듯합니다.

일주일에  한 두 번 정도는 포스팅 준비가 될것도 같은데...

무쪼록....

님들과 더불어

좋은 시간, 행복한 일만 함께 할 수 있는 나날이 이어졌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