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보다 낯선 사랑/♥아름다운 동행

유월의 시 27 편 모음/The Evening Bell저녁 종소리 Sheila Ryan [가사 번역 ]

Blue 탁이 2020. 6. 7. 20:09

 

 

유월의 시 모음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류시화,

그리움의 계절/한아영,

어린 봄들의 속삭임/우주,

어떤 날/도종환

미루나무 같은 고독/문성호,

그래서/김소연,

가끔은/바람속 김은주,

수국, 지다/박은율,

꿈, 영원한 꿈/탁이,

가고파/이은상,

어떤 마을/도종환,

바람의 찻집에서/류시화,

비상/한아영,

유월/김사랑,

저공비행/장석주,

어느 골목을 찾아서/김유선

네 어깨너머/김충규,

행복의 강/김덕성,

강가에 서면/박영란,

향기로운 그대를 사랑해요/한송이 ,

당신/문성호, 

살구나무 여인숙/장석남,

사랑은 선율을 타고/은향 배혜경,

서해/이성복,

참 좋은 당신/김용택,

커피 한 잔으로 당신을 그리는 밤/이채,

태평양/박인환



 

1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류시화

 

 

 

세월이 이따금 나에게 묻는다

사랑은 그 후 어떻게 되었느냐고

 

물안개처럼 몇 겹의 인연이라는 것도

아주 쉽게 부서지더라

 

세월은 온전하게 주위의 풍경을

단단히 부여잡고 있었다

 

섭섭하게도 변해 버린 것은 내 주위에 없었다

두리번거리는 모든 것은 그대로였다

 

사람들은 흘렀고 여전히 나는

그 긴 벤치에 그대로였다

 

이제 세월이 나에게 묻는다

그럼 너는 무엇이 변했느냐고 

 

 

 

 

<2014년 4월 뉴욕에서 '렌' 님의 추천 시>

 


 

2

그리움의 계절

 

한아영

 

 

 

과거라는 낡은 도장에

부끄러운 언어로 된

붉은 잉크를 찍어

 

이미 퇴색되어버린 언약에

몇 개의 날인을 해 본다

 

가슴 가득히 밀려드는

또 다른 그리움은

사랑이 떠나버린 증거로

오래도록 가슴속에 머물러

 

어느새 계절은 가고

또 다른 계절이 왔는데

 

꽃 진 자리에 피어나는

이 아픈 향기는 그리움

 

 

<한아영 님 자작시>


 

3

어린 봄들의 속삭임

 

우주

 

 

 

비가 온다고요?

창 밖의 들풀과

키만 훌쩍 커 버린

벚나무가 물어봅니다.

 

그래요, 비가 오네요

자랑처럼 푸르렀던 목숨이

잠깐의 방울방울 스침에도

하나 둘 그 많았던

소망들을 내려놓네요

새들은 물안개 속으로 날아가는데...

 

비가 오나요?

달이 보이지 않는 하늘 아래

달맞이꽃이 고개만 끄덕이네요.

 

<2016년 4월 우주 님 자작시>


 

 

4

어떤 날

 

도종환

 

 

 

 

어떤 날은 아무 걱정도 없이

풍경 소리를 듣고 있었으면

바람이 그칠 때까지 듣고 있었으면

 

 

어떤 날은 집착을 버리듯

근심도 버리고 홀로 있었으면

바람이 나뭇잎을 다 만나고 올 때까지

홀로 있었으면

 

 

바람이 소쩍새 소리를 천천히 가지고

되오는 동안 밤도 오고

별 하나 손에 닿는 대로 따다가

옷섶으로 닦고 또 닦고 있었으면

 

 

어떤 날은 나뭇잎처럼 즈믄 번뇌의 나무에서 떠나

억겁의 강물 위를 소리 없이 누워 흘러갔으면

무념무상 흘러갔으면...

 

 

 

<2017년 6월 '아이린' 님 추천 시>


 

 

5

미루나무 같은 고독

 

문성호

 

 

 

 

 

동구 밖에 큰 미루나무가

혼자 서 있습니다

하루 종일 마을로 들어오는

버스를 지켜보거나

하굣길 우르르 몰려다니는

아이들을 지켜보기도 합니다

 

아이들이 자라나 버스를 타고

마을을 떠나는 모습을 말없이 지켜봅니다

 

서울 손주들 나무 밑까지 배웅을 나오시던

시골 할머니의 하얀 꽃상여를

마을 사람들이 지고 산으로 오르는 것도

흐릿한 눈으로 멀리서 바라보고 있습니다

 

오늘도 나의 출근길을 묵묵히

바라봐주던 나무는

외로워도 산 밑의 울창한 숲으로

걸어갈 수가 없습니다

 

단조의 리듬만으로도 마음 시린 오늘은

나무의 고집스러운 고독이 부럽습니다.

 

<2013년 8월 13일 문성호 산문시>


 

6

그래서

 

김소연

 

 

 

 

 

잘 지내요, 그래서 슬픔이 말라가요

내가 하는 말을 나 혼자 듣고 지냅니다

아 좋다,

같은 말을 내가 하고 나 혼자 듣습니다.

 

 

내일이 문 바깥에 도착한 지 오래되었어요

그늘에 앉아 긴 혀를 빼물고 하루를 보내는 개처럼

내일의 냄새를 모르는 척합니다.

잘 지내는 걸까 궁금한 사람 하나 없이

내일의 날씨를 염려한 적도 없이

 

 

오후 내내 쌓아둔 모래성이

파도에 서서히 붕괴되는 걸 바라보았고

허리가 굽은 노인이 아코디언을 켜는 걸

한참 들었어요.

 

 

잠에서 깨어난 아침마다

검은 연민이 몸을 뒤척여 죄를 통과합니다.

바람이 통과하는 빨래들처럼

슬픔이 말라갑니다.

 

 

잘 지내냐는 안부는 안 듣고 싶어요

안부가 슬픔을 깨울 테니까요

 

 

<알페지오 님 추천 시>


 

 

7.

가끔은...

 

 

바람속 김은주

 

 

 

 

 

 

 

가끔은 슬프고 

가끔은 아파요

 

 

때론,

그 가끔이 아주 많이

길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이

내 마음의 정원에

피어난 꽃들이랍니다

 

 

훗날 나의 정원을 바라보면서

아름다웠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게

 

"지금"을 이쁘게 가꾸는 

우리가 되어요.

 

삶은,

현재를 이어가는 파티이니까요.

 

 

<2016년 7월 13일 '김은주' 님 자작시>


 

 

8

수국, 지다

 

박은율

 

 

 

 

 

 

링거병 매달고 집에 온 지 하루

너는 다시 실려 나가고

수국 꽃이 울도록 돌아오지 않는다

 

 

바퀴벌레처럼 빠르게 증식되는 불안

시간이 느리게 발효되는 항아리들

묵직하게 늘어선 장독대

쐐기풀 무성한 마당,

온종일 네 그림자 어른거린다

 

 

이따금 다급히 울다

제풀에 잦아드는 전화벨 소리

낡은 처마 밑 왕거미줄에 맹렬히

바들 거리던 한 마리 나비

마침내 고요해진다

 

 

바람도 없는데 저절로 여닫히는 대문

썰물 지듯 빠져나가는 저녁놀

 

 

<알페지오 '님 추천 시>

 

 

 

 


 

 

 

9

꿈, 영원한 꿈

 

 

Blue 탁이

 

 

 

 

 

꿈은 실현되지 아니할 때 

꿈으로서 존재합니다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

같은 자리만을 맴도는 가위눌림처럼

무기력하게 부유하던 흑백 풍경 속에서

비로소 현실로 돌아오고는 하지요.

 

 

나는 아름다운 꿈을 꿀수록

이룰 수 없는 서글픔에

언제나 목이 멥니다.

 

 

그래도 나는 꿈을 꿉니다.

어쩌면 나는

두터운 꿈의 벽속에 갇혀

영원히 깨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몽상가입니다.

 

 

내가 꾸는 꿈처럼 

소망하는 것들이

이루어지게 된다면

 

 

나는 꿈에서 깨어나

또 다른 꿈을 꿀 것입니다.

영원히 깨어날 수 없는 

깊고도 아득히 먼 꿈을...

 

 

<Blue 탁이 자작시>


 

 

10

가고파

 

 

이은상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어릴 때 같이 놀던

그 동무들 그리워라

어디 간들 잊으리오

그 뛰놀던 고향 동무

오늘은 다 무얼 하는 고

 

 

보고파라 보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이하여

떠나 살게 되었는고

 

 

혼자서 다 뿌리치고

돌아갈까 돌아가

가서 한데 얼려

옛날 같이 살고 지고

 

 

내 마음 색동옷 입혀

웃고 웃고 지내고자

오늘도 그 눈물 없던 때를

찾아갈까 찾아가

 

<이소망 님 추천 시>


 

11

어떤 마을

 

도종환

 

 

 

 

사람들이 착하게 사는지

별들이 많이 떴다

 

개울물 맑게 흐르는 곳에

마을을 이루고

 

물바가지에 떠 담던

접동새 소리 별 그림자

 

그 물로 쌀을 씻어

밥 짓는 냄새나면

 

굴뚝 가까이 내려오던

밥 티처럼 따스한 별들이 뜬

마을을 지난다

 

사람이 순하게 사는지

별들이 참 많이 떴다

 

 

<2017 6월 3일 '벨 에포크' 님 추천 시>


 

 

12

바람의 찻집에서

 

류시화

 

 

 

바람의 찻집에 앉아

세상을 바라보았지

긴 장대 끝에서 기도 깃발은 울고

구름이 우려낸 차 한 잔을 건네받으며

가장 먼 데서 날아온 새에게 

집의 안부를 물었지

 

나 멀리 떠나와 길에서 절반의 생을 보내며

이미 떠나간 것들과 작별하는 법을 배웠지

가슴에 둥지를 틀었다 날아간 날개들에게서

손등에서 녹는 눈발들과 주머니에 넣고

오랫동안 만지작거린 불꽃의 씨앗들로

모든 것이 더 진실했던 그때

 

어린 뱀의 눈을 하고 해답을 구하기 위해 길 떠났으나

소금과 태양의 길 위에서 이내 질문들이 사라졌지

 

때로 주머니에서 꺼낸 돌들로 점을 치면서

해탈은 멀고, 허무는 가까웠지만 후회는 없었지

 

탄생과 죽음의 소식을 들으며

어떤 계절의 중력도 거부하도록

다만 영혼을 가볍게 만들었지.

 

찰나의 순간,

별똥별의 빗금보다 밝게 빛나는

깨달음도 있었으나 빛과 환영의 오후를 지나

가끔은 황혼과 바람뿐인 찻집에서 차를 마시며

생의 지붕들을 내려다 보고

고독할 때면 별의 문자를 배웠지

 

누가 어두운 곳에 저리도 많은 상처를 새겼을까

그것들은 폐허에 핀 꽃들이었지

그러고는 입으로 불어 별들을 끄고 잠이 들었지

봉인된 가슴속에 옛사랑을 가두고

외딴 행성 바람의 찻집에서...

 

<2014년 11월 30일 '그대만의 모닝'추천 시>


 

 

13

비상

 

한아영

 

 

 

 

 

선풍기만 밤새 혼자서

외롭게 돌고 있었나 봐요

먼지가 산호초처럼 덕지덕지

들러붙어 있는 걸 보았었는데...

 

접힌 커튼 사이로 스며드는 빛

빛의 경계 너머는 아직도 어두워

새장 안에선 작고 노란 카나리아가

고막을 자극하는 비명을 질러대네요

참 예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주었었는데

 

그러고 보니 저 애는 혼자야

어쩌다 짝을 잃게 되었지?

한참을 생각해 보고 나서야

처음부터 혼자였다는 사실을 알았어요

 

언제부턴가 벽지와 하나가 되어버린

그의 사진이 빛바랜 시선으로

나를 비웃듯이 내려다보고 있습니다

나는 무슨 감정으로

그의 사진을 저곳에 붙였던 걸까요

 

이미 오래전부터 저 사진은

벽지의 이음새를 방해하는

천덕꾸러기에 지나지 않았죠

 

도대체 난 얼마나 누워 있었던 걸까요

일어났으면 기지개부터 힘차게 켜야 한다

낮은 신음과 동시에 뼈마디가 잘게 부서진다

 

이제는 무조건 외출을 해야만 해

이 늪처럼 어둡고 숨 막히는 공간에서

최대한 멀리 벗어나야만 해

 

나를 어지럽게 지나가는 풍경들이

서서히 제 자리를 찾아 멈출 때까지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는 수족관에 들려

저 애의 예쁜 짝이 되어줄

카나리아도 한 마리 사 올 거야

밝은 벽지도, 갈색 체크무늬 커튼도...

 

이제 다시 시작하는 거야

창을 최대한 열어젖히고

밀려드는 새 바람에 얼굴을 씻자

태양빛을 정면으로 받으며

움츠러든 가슴에 생명을 불어넣자

 

그러다 보면

카나리아도 예전처럼 다시

비명 아닌 노래를 불러 주겠지

싱그럽고 해맑은 목소리로...

 

<2009년 8월 27일 뉴욕에서 '한아영' 작시>


 

 

 

14

유월

 

김사랑

 

 

 

 

 

계절의 절반은 유월

인생의 절반은 중년

내 인생의 유월이 옵니다

 

개망초 꽃 이름 없는 꽃

말없이 피고 져도

자연이 변함이 있겠냐만은

 

나 혼자 변한다고

세상이 달라지겠냐만은

 

오디가 검게 익는 유월이 오면

무논에 모를 심겠습니다

 

무논에 개구리가 울고

장대비가 내리고

별이 빠져 있는 밤이 지나면

 

자연과 더불어 인생이 바뀌고

인생과 더불어 세상도 변하겠지요

 

사랑이 중심이 되어 사람이 사람다운

아름다운 세상을 유월엔 기도해 봅니다.

 

<레인 김연희 님 추천 시>


 

 

15

저공비행 

 

장석주

 

 

 

 


황사가 덮친 뒤
지붕들은 실의에 빠졌다.

먼산들은 조금 더 멀어지고
먼바다에는 파랑주의보가 내려진다.

 

실의는 너희들 것이 아냐.
꽃을 비싸게 팔아 보려는 자들의 것.

태양계에서 명왕성이 퇴출당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며 국정원장은 바뀌고
우주선에 탑승할 한국인도
이소연 씨로 교체되었다.

 

코트를 벗는데 단추가 떨어진다.

무심코 마당 한 귀에
떨어져 있는 새똥들.
작년의 새들은 오지 않고
수 천년을 흐르던 물길이
바뀌리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흐름을 바꾸려는 자들이 돌아온다.

나는 강까지 걷던 습관을 버렸다.

 

옆집에서 며느리가 아이를 낳은 모양이다.

아기들은 습관의 동물들이다.
배고프면 울고
기저귀가 축축해지면 또 운다.
목욕과 이야기와 젖만이
그 울음을 달랜다.
모든 습관은 무섭다.

 

모란꽃이 피는 이 세상은
태어나는 자들과 죽은 자들이
임무를 교대하는 곳,
기일(忌日)들은 언제나 빨리 돌아오고
기일을 남긴 자들은 서둘러 잊힌다.

 

어제는 아버지 일곱 번째 기일이었다.
나는 기일에 납골당을 가는 대신에
아버지가 말년을 보낸 성북동엘 다녀왔다.

옛 성곽 아래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며
남의 집 마당을 들여다 보고
빨랫줄에 걸린 빨래들이 잘 마르는가를 염려했다.

 

기일 저녁에는 면도를 하고
정종 파는 집에 가서 정종 석 잔을 마셨다.

동생들은 연락이 없고
내 슬픔은 미적지근했다.

 

미국 경기 침체가 본격화하리라는 소식에
어제 코스닥은 맥을 못 추고 급락했다.

페놀이 섞인 강물에서 죽은 고기들이 뜨고,
대운하로 한몫 챙기려는 자들이
사업 구상에 골몰하는 이 밤,

 

빈 깡통을 차서 어둠 저쪽으로 날렸다.

깡통에 맞고 어둠 한쪽이 일그러진다.

판자들은 삭고 판자에 박힌 못 들은
붉은 땀을 흘리며 세월을 견딘다.

 

조카 딸년과 당신과 사철나무는 푸르고,
이쁜 것들은 다 푸르다.

나는 뻔뻔한 자들과 연루되었다.

용서하는 자가 아니라
용서받아야 할 자다.

푸른 것들만 무죄다.
푸른 것들의 계보에 속하는
당신 속에는 암초와 법칙들이 자라난다.

나를 용서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할 수 없다.

 

매화와 산수유가 찬바람 속에서
꽃눈을 준비하는데
황사로 개화는 며칠 더 늦춰진다.
기어코 조카애의 초경이 터진다.

 

-장석주 시집 <몽해 항로> 중에서-

 

<벨 에포크 님 추천 시>


 

 

16

어느 골목을 찾아서

 

김유선

 

 

 

 

 

 

골목은 넓어져 반쯤 낯설어진 그 길

거기 복덕방 명조체 페인트 글씨 대신

부동산 중개업소 아크릴로 번쩍이는데

이제 그곳에 내 기억의 골목은

몇 번지나 남아있는지요

 

황혼 짙어지면 나는 누구를 기다리려

키 높은 장독대 넘어 담 밖을 더듬었는지

밤마다 담은 높아지고

찾아 헤매고 돌아온 지친 발목에 엉겨 붙어

씻겨지지 않던 그리움들

 

그때 함께 버린 구정물 지금 어느 바다

어느 파도 자락에 등 굽히는지

이제 그곳 즈음에서

나는 여전히 비쩍 마른

기억 속의 휘파람을 찾고 있어요

 

둘러보면 낮으막한 기와집들 땅 속으로 숨었는지

고층 아파트 숲 피해 돌고 돌아도

훗날 땅 속에서 그립게 만나 질지

거기 그가 있었는지

 

그 말과 체온 어디로 가고

내 기억의 골목 반쯤 낯익은 것은

사라진 저 구석 옛집 마당 은행나무 노랗던

휘파람 그 기억의 노오란 소리

 

 

 

<<러브스토리 게시판에서 '벨 에포크' 님이 올린 글을 옮겨옴/2014년 연초에...>


 

 

17

네 어깨너머

 

김충규

 

 

 

 

 

 

네 어깨너머, 낮달이 서걱거렸다

물결을 끌고 온 새 떼가 네 어깨너머, 푹 꺼졌다

멀리 숲에 나무들이 제 비늘을 벗겨내고

생선처럼 누웠다고 네가 속삭였다

 

저 숲에 함께 날아가겠니?라고 다정하게 덧붙였다

관심이 없었다 네 어깨너머,

길바닥에 죽어 있는 고양이가 스산했다.

어젯밤에 배가 고파 울던 그 고양이였다

분명 무늬가 같았다

 

살아있던 무엇인가가 소멸할 때

그 몸속에 있던 빛들은 어디로 가는 걸까

죽어볼까? 뜬금없는 내 말에

네 어깨가 막 피어오르던 일몰을 가렸다

남편보다 고양이를 더 사랑하는 여자를 알아,

네가 말했다

너니?라고 묻지 않았다

 

네 어깨너머, 달이 화장을 하고

바람이 숲의 비린내를 몰고 오고

너는 더는 말이 없고 나도 말이 없고

휴대폰엔 죽은 스승을 만나러 숲으로 갈까?라는

친구의 문자가 식어 있고

오늘 밤엔 어떤 고양이를 만날까

 

 

<알페지오 님 추천 시>


 

 

18

행복의 강 

 

김덕성 詩

 

 


하루같이 살아온
짧으면 짧고 길 다면 긴 인생길

돌이켜 보면
욕망의 길이요
금자탑을 쌓는 길로
참으로 무모한 삶이었습니다

이제 그만 그 삶을 접고
화려하지 못해도
사랑으로 환히 트인
소박하고 겸손한 삶으로 떠납니다

 

희망의 내일을 바라보며
변함없는 사랑으로  
서로 다독이면서
다정하게 손을 꼭 잡고
임과 함께
흘러가는 강입니다

 

 

<2018년 1월 9일 '소중한 숙이' 님 추천 시>


 

 

19

강가에 서면

 

박영란

 

 

 

 


강가에 서면 그대가 보인다
새들은 노래하며 날고
하루가 오고 하루가 가도
그리움으로 피어나는 사랑의 환희
영원히 빛이 되어주는 속삭임
추억은 너무 소중해서 행복하다

 

 

그대는 향긋한 숨결로
언제나 좋아라 내 곁에
나와 함께 머물러 있지만

홀로 남겨진 내 마음
기다림은 노랗게 익어만 간다


오늘 그대의 사랑 나풀나풀
내 가슴에 행복한 나비 되어 온다

 

 

< 2014.08.31 22:24 그림물감' 님 추천 시>


 

20

향기로운 그대를 사랑해요

 

한송이 詩

 

 

 

 

 

들판에 핀 예쁜 들꽃처럼

향기로운 그대는 언제나

나와 함께 있고 싶은 사람

사랑한다 말해주는 그대

당신 때문에 나는 행복해요

 

항상 들꽃 같은 사람이여

미소가 예쁘고 향기 나는

그대가 옆에 항상 있기에

향기로운 그대를 사랑해요

 

꽃향기 풍겨오는 이 아침

풀잎 끝에 맺힌 이슬처럼

맑은 수정 같은 눈동자는

 

마음 유혹하는 시간이지요

미소진 하루를 그려가는

세월 속을 함께 걸어가며

힘들고 어려울 때 챙겨주고

서로 부족한 면을 채워가는

우리는 다정한 환상의 커플

 

마음이 다를 때도 있겠지만

사랑하며 보듬어 줄 수 있는

둘이 아닌 하나의 마음으로

인생을 함께 가꾸어 갈 동반자

당신과 걸어갈 수 있어 좋아요

 

<2009년 이른 봄에 '글로리아 김정희 추천 시>


 

 

21

당신

 

문성호

 

 

 

 

내게 오랜 연인이 있는데

늘 나를 특별하게 생각해 주던

많은 시간이 흐르긴 했지만,

 

나를 바라볼 때면 밝게 빛나던

그 눈망울 속의 별은 사라졌어도

항상 내 생각을 먼저 해 주던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나를 기다리게 한다면

10분 20분 30분 그리고 한 시간...

 

굳어있는 내 얼굴을 보고

화를 풀라고 하지만

웃어 보일 수가 없었다면

그건 화난 게 아니라 슬펐던 거예요

 

너무 많은 시간이 흘러서

내 오랜 연인의 마음도

이젠 늙어서 그런 거라고

그래서 슬펐던 거라고...

 

<2017년 7월 20일 문성호 님 자작시>


 

 

22

살구나무 여인숙

 

장석남

 

 

 

 

 

마당에는 살구나무가 한 주 서 있었다
일층은 주인이 살고
그 옆에는 바닷소리가 살았다

 

아주 작은 방들이 여럿
하나씩 내놓은 窓엔
살구나무에 놀러 온 하늘이 살았다

 

형광등에서는 쉬라 쉬라 소리가 났다
가슴 복잡한 낙서들이 파르르 떨었다

 

가끔 옆방에서는 대통령으로 덮은
짜장면 그릇이 나와 있었다

 

감색 목도리를 한 새가 하나 자주 왔으나
어느 날 주인집 고양이가
총총히 물고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살구나무엔 새의 자리가 하나 비었으나
그냥 맑았다 나는 나왔으나 그 집은
그냥 맑았다


-제주에서 달포 남짓 살 때 -(시의 부제)/

 

 

 

담아준 님ㅣ2016/01/16 ㅣ15:27:03 벨 에포크


 

23

사랑은 선율을 타고

 

은향 배혜경

 

 

 

 

감미로운 선율에

분홍빛 사랑을 싣고

새들이 정답게 노래하는

행복의 보금자리

 

그대 향기로운 가슴

깊숙이 흘러갑니다

 

고운 선율이 숨을 멈추고

눈부신 햇살이

잠자리에 들 시간

 

그대 뜨거운 가슴속에는

아름다운 저녁노을이 물들고

붉은빛 사랑이 여울져 있겠지요

 

<2010년 봄에 매사추세츠 보스턴에서 '글로리아' 추천 시>


 

 

24

서해

 

 

이성복

 

 

 

 

 

 

아직 서해에 가 보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당신이 거기 계실지 모르겠기에

 

그곳이 바다인들 여느 바다와 다를까요

검은 개펄에 작은 게들이

구멍 속을 들락 거리고

언제나 바다는 진펄에 몸을 뒤척이겠지요

 

당신이 계실 자리를 위해

가 보지 않은 곳을

남겨 두어야 할까 봅니다

내가 가 보면

당신 계실 곳이 남지 않을 것이기에

 

내가 가 보지 않은 한쪽 바다는

늘 마음속에서나마

파도치고 있습니다.

 

<벨 에포크 님 추천 시>


 

 

25

참 좋은 당신

 

김용택

 

 

 

 

 

어느 봄날 당신의 사랑으로

응달지던 내 뒤란에

햇빛이 들이치는 기쁨을

나는 보았습니다.

 

어둠 속에서 사랑의 불가로

나를 가만히 불러내신 당신은

 

어둠을 건너온 자만이

만들 수 있는

밝고 환한 빛으로 내 앞에 서서

들꽃처럼 깨끗하게 웃었지요

아,

생각만 해도 참 좋은 당신.

 

<알페지오 님 추천 시>


 

26

커피 한 잔으로 당신을 그리는 밤

 

이채

 

 

 

 

 

당신이 그리운 밤이면

웃어도 눈물 한 줌

얼룩진 가슴으로 젖어 내려

어렴풋이 떠 오르는 영상마저

어득한 그리움 되어 사라집니다.

 

당신이 그리워 그리워서

커피 한 잔으로 달래 보는 밤

이슬마저 슬프게 내리는 길

더는 다가갈 수 없고

다시는 돌아올 수 없는 당신

아직도 속살 묻히듯

가슴에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그리워 너무도 그리워

커피 한 잔으로 달래 보는 밤

 

고독은 태연히 앉아

절대 고독을 부르고

억누르지 못한 추억의 잔상들이

어둠마저 출렁이게 합니다.

 

 

<보스톤의 글로리아 님 추천 시>


 

27

태평양

 

박인환

 

 

 

 

 

갈매기와 하나의 물체

 

고독
연월도 없고 태양도 차갑다
나는 아무 욕망도 갖지 않겠다
더욱이 낭만과 정서는
저기 부서지는 거품 속에 있어라


죽어간 자의 표정처럼
무겁고 침울한 파도 그것이 노할 때
나는 살아 있는 자라고 외칠 수 없었다
그저 의지의 믿음만을 위하여
심유한 바다 위를 흘러가는 것이다


태평양에 안개가 끼고 비가 내릴 때
검은 날개에 검은 입술을 가진
갈매기들이 나의 가까운 시야에서
나를 조롱한다


환상
나는 남아 있는 것과
잃어버린 것과의 비례를 모른다
옛날 불안을 이야기했었을 때
이 바다에선 포함이 가라앉고
수 십만의 인간이 죽었다

어둠침침한 조용한 바다에서
모든 것은 잠이 들었다


그렇다 나는 지금
무엇을 의식하고 있는가?

바람이 분다
마음대로 불어라.
나는 데키에 매달려
기념이라고 담배를 피운다


무한한 고독
저 연기는 어디로 가나

밤이여 무한한 하늘과
물과 그 사이에
나를 잠들게 해라

 


담아준 님ㅣ2014/11/08/14:18:20 ㅣ벨 에포크

 


이상 27편의 시를 포스팅에 담아 봅니다.

제목을 유월의 시'라고 적긴 했지만,

실제로 유월과 어울리는 시 인지는 장담을 못하겠고,

나의 주관적 시점에서 마음이 정하는 대로 초이스 해 보았습니다.

몇몇 편의 문우 님들의 자작시도 함께 했습니다.

 

대부분(거의 다)의 시나 수필들이 수 년 동안

블로그의 포스팅에 이미 담겼던

시로 이루어졌고, 이미지도 사용한 이미지에

폰트를 재 구성하는 방식으로 리우즈했습니다.

 

지난 포스팅을 한 페이지에 담아 본다는 일이란

매우 흥미로운 작업입니다.

 

어느 한 시인의 매너리즘에 몰입되지 않고

다양하게 즐길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여러 님들이 함께 참여했다는 만족감...

 

무쪼록 편한 마음으로 쉬어갔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다만 한 가지 걱정 되는 것은......

컴 사양이 낮거나 인터넷 상태가 좋지 못한 님이시라면...

어쩌면 이 포스팅을 클릭하는 순간

렉이 발생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입니다.

 

블로그를 만든지 이 십여년 기간중에

오늘의 포스팅이 가장 용량을 많이 담았기 때문입니다.

이미지도 거의가 10메가 미만의 대용량 Gif 이미지라서

걱정과 우려가 앞서지만,

새로운 블로그 시스템으로 가능한지 나 스스로도 궁금하고

도전해 보고 싶었답니다.

제발 시스템 작동이 원활했으면 합니다.

 

 

The Evening Bell저녁 종소리 Sheila Ryan [가사 번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