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5월에
/곽재구
자운영 흐드러진
강둑길 걷고 있으면
어디서 보았을까
낯익은 차림의 사내 하나
강물 줄기를 거슬러 올라간다
염색한 낡은 군복 바지에
철 지난 겨울 파커를 입고
등에 맨 배낭 위에
보랏빛 자운영 몇 송이 꽂혀
바람에 하늘거린다
스물 서넛 되었을까
여윈 얼굴에 눈빛이 빛나는데
어디서 만났는지 알지 못해도
우리는 한 형제
옷깃을 스치는 바람결에
뜨거운 눈 인사를 한다
그 5월에 우리는 사랑을 찾았을까
끝내 잊었을까 되뇌이는 바람결에
우수수 자운영 꽃잎들이 일어서는데
그 5월에 진 꽃들은
다시 이 강변 어디에
이름도 모르는 조그만
풀잡맹이들로 피어났을까
피어나서 저렇듯 온몸으로 온몸으로
봄 강둑을 불태우고 있을까
돌아보면 저만치
사내의 뒷모습이 보이고
굽이치는 강물 줄기를 따라
자운영 꽃들만 숨가쁘게 빛나고
<2014/5/5(월) 러브스토리 게시판>알페지오 올림
blog.daum.net/anitaki/16878285
소중한 문우이자 사랑하는 친구인 문성호'작가님이
예전(2014년 5월)에
러브스토리 게시판을 이용해 담아 주셨던
곽재구님의 시를 포스팅으로 준비해 봅니다.
이미 오래전에 포스팅에 담았었지만,
그때는 이미지에 직접 타이핑을 했기 때문에
이미지로만 등록이 되었겠지요.
곽재구 님의 시'는 거의 다 좋아하게 되었지만,
특히 이 시를 좋아하게 된 것은
시의 본문에 등장하는 자운영이란 꽃 때문이었습니다.
유년기때 자운영 꽃 속에 묻혀 살았으면서도
자운영이란 꽃을 전혀 인지 하지도 못했고
흔한 꽃이라서 그런지 봄이면 산들에 흔하게 피어나는
잡풀 정도의 인식 때문이었는지...
어쨋든 잊고 살아왔는데 이 시를 되뇌여 음미하다가
문득, 자운영을 검색으로 찾아 보게 되었고,
그로인해 아하~자운영이 그 꽃......
그랬습니다.
자운영은 유년기부터 청소년기까지 고향의 들이나 야산 둔덕에서
흔하게 보던 그 보라색 꽃이었습니다.
자운영꽃에 대해서 실마리가 드러나는 순간
나는 수 십년전의 등교길로 순간 이동을 했습니다.
중학교 시절...어머님이 많이 편찮으셔서
새벽 버스를 탈 수가 없었기 때문에
읍내에서 여고를 다니는 손위 누나와 자취를 하면서
등교길이 타학교 학생들과 반대가 되었습니다.
읍내로 통학하는 학생들과 나의 길이 서로 반대가 된 것이었죠.
그러다보니 교통편이 여의치 않아서 약 20리 길을
걸어서 통학을 해야만 했는데
거리가 멀다보니 자꾸만 지름길을 찾게되었고
그 길이 그 길이지만 조금이라도 빠른길을 찾게 되었습니다.
읍내에서 여고를 지나 백암산을 넘으면 채운교가 나오고
채운교를 건너는 순간 엄청나게 넓은
예당평야의 한 지류가 펼쳐집니다.
그곳에서 차도를 타지 않고 원뚝을 걷게되면
길이 조금 단축되는데...
지금도 생각해보면 나의 뇌리속에는 온통,
그 원뚝길을 걸은 기억밖에는 나지 않습니다.
까마득하게 보이는 원뚝의 맞은편...
그곳엔 시골마을 특유의 작은 하꼬방이 있었지요.
판자로 지은집의 대청에 선반을 몇 개 놓고
인스턴트 식품 몇종을 얹어놓고 팔던 작고 조그만 가게...
그 원뚝길이 학창시절에는 하나의 딜레마로 나를 괴롭혔습니다.
가도가도 끝이 없던 그길...
그곳에 봄이면 아지랑이 가물거리는 사이사이로 자운영이
온통 보랏빛으로 둑을 채색하며 뒤덮었었지요.
나를 정말 지루하고 힘들게 했던 그곳...
하지만,
군복무를 마치고 가끔씩 고향에 내려갈 일이 있을때면
나는 대중 교통편을 이용하지 않고
그 길이 걷고 싶어서 40리 길을 걸어걸어 집으로 가곤 했습니다.
옛 기억을 애써 떠 올리며 내 눈은 쉴새없이 뭔가를 찾았지요.
둑에 피어난 들꽃,수로를 배영하는 작은 물고기들...
하지만,수 년전에 이미 그 둑은 없어졌고
그곳에 아스팔트가 깔리는 바람에 이제는 뇌리에 담겨 있는 기억에만
의존하며 추억하고 있습니다.
그리운 자운영,
되돌리고 싶은 채운리와 봉생리의 20리 신작로길....
지금은 그곳이 못내 그립기만 합니다.
FIRST OF MAY (Lyrics) - THE BEE GEES
<비지스'의 5월의 첫째날 노래가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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