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보다 낯선 사랑/♧나의 인생 메모

Time / Alan Parsons Projectㅣ영화속 자막에서 내 이름을 볼때마다...

Blue 탁이 2015. 12. 21. 23:42

Time / Alan Parsons Project

 

 톰과 제리 - 스파이 대작전.Tom And Jerry - Spy Quest.2015.

영화나 드라마 혹은 만화영화에서 자막으로 보여지던 나의 이름이 이젠 낯설지 않을만큼 익숙해져 있는 편이지만,

오늘 우연히 불법 다운 받았던 '톰&제리에서 본 내 이름은 좀더 감회가 새로왔습니다.

 

어제 마지막 시퀀스의 와빗 레이아웃을 마치고 집에서 한껏 게으름을 피우다가

혹시 새로운 영화가 있나해서 클럽박스를 검색해 보던중...

 

너무나 낯이 익은 영화 화보가 눈에 띄어 얼른 다운을 했습니다.

작년에 회사를 옮기고 처음으로 맡았던 원어 브라더스사의 톰과 제리 장편 시리즈 '스파이 대작전'이었는데

벌써 인터넷에 떠돌다니 빠르긴 빠르네 하면서 처음부터 편한 마음으로 보다보니

The End가 되고 자막이 오르는데...설마 했는데 내 이름이 보이더군요.

회사를 옮긴 직후였고 참여 스탭도 많았기 때문에 제외 될 줄 알았는데...

TV나 영화 스크린에서 감독이나 시나리오,혹은 아티스트로 기록된 내 이름을 본것이 처음은 아니지만

오늘 톰과 제리에서 내 이름을 볼때는 감회가 더욱 새로왔습니다.

 

전에 국내에서는 실패했지만 캐나다에서는 굉장한 흥행의 기록을 세우며 어린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쿵푸 수호대'는 그당시 미국의 친구가 화면을 캡춰하는 방법을 몰라 자신의 폰카로 내 이름을 찍어서

메일로 보내 주었을때 느꼈던 뿌듯함 이후에 처음으로 느껴보는 설레임...

궁극의 에니메이션이며 수 맣은 에니메이터의 꿈이었던 '월트 디즈니'의 작품 '101마리의 개' TV시리즈물에

처음으로 이름을 등록시켰을 때(1998)가슴속 환희속의 중심에 있던 한 사람,

그리고 오늘 우연히 '원어 브라더스'사의 톰과 제리 작품속에서 자막으로 본 내 이름을 보면서 느꼈던 감개무량함...

그속에는 내 평생 지울 수 없는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군에 다녀 오신 분들은 공감하시겠지만,

제대후 복학해야 하는 사람,취직을 해야하는 사람...

누구를 막론하고 제대후 거취에 대해서 고민을 해 보셨을 겁니다.

내가 복무할때 역시나 제대 말년이 되면 다들 그런 고민을 떠 안고 말년을 보내곤 했었는데...

 

난 그렇지 않았습니다.

단단히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지요.

이거 저거 다 해보다가 안되면, 그림을 그리면 먹고 살 수 있다'라는 믿음이 있어서였는데...

내가 그런 착각을 하는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친구는 물론, 동네 어른들,선배들,선생님들...모두가 나를 아는 사람이라면

그림쪽에 천재라는데에 대해서 이견이 없었으며,

실제로 어느 대회에 나가든 마음만 먹으면 상장을 거머 쥘 수가 있었던 내역 때문이었는데...

 

제대후 복학을 했다가 그해 여름방학때로 기억 되어 지는데...

어느날 신문에서 하나의 광고를 보게 되었습니다.

'누구나 가능하며 삼개월 후 월수입 100보장,꿈의 직업 에니메이션!"

 

그 신문의 광고를 보는 순간 난 숨이 멎을 정도로 기뻐했습니다.

마치 나를 위해 존재하는 직업이란 생각과 함께 학원을 찾아 갔습니다.

"보통 사람이 100이면 난 천재니까 200이상은 벌 수 있겠군...!"이런 자만심과 함께...

 

100만원이란 액수가 요즘은 별게 아니지만, 그당시에 일반회사의 경리 월급이 18만원 정도였고,

선생님들 월급이 25만원 정도였으니까

정말 큰 액수였을 겁니다.

 

일단 3개월 코스로 수강 신청을 했지만,

난 천재였으므로 한달을 채우기전에 슬그머니 에니메이션 회사를 알아 본 후에

그 당시에 일이 가장 많았던 용산의 모회사에 찾아갔습니다.

 

회사에 공채로 시험을 치뤄서 들어가면 일단 연수기간이 3개월정도 주어지게 되는데...

연수비가 6만원이었습니다.

 

하지만 난 천재였으므로

연수를 건너뛰고 직접 실무에 배치되었습니다.

여기까진 좋았지요.

여기까진...일반적인 천재들이 거치는 과정이었을테니...

하지만,

첫 커트를 받아든 순간

잠시후에 패닉 상태가 되었습니다.그리고 쓰디쓴 좌절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타임쉬트'에서부터 원작지와 원화지조차 구분을 못했으니까요.

 

도데체 어디서부터 연필을 대야하는지도 몰랐고,

주위 사람들의 그림을 보니까...나보다는 모두가 뛰어났습니다.

 

난 내 자신이 천재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확신했었는데...

내가 가장 재질이 없는 밑바닥이었단 사실을 깨닳았을때는

이미 주사위는 던져진 상태라 뒤로 돌이켜 연수실로 찾아 갈 수도 없었고,

내가 알아서 할 수 있는 일은 더욱이 없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회사에 출근만 하는 신세라니...

다른 선배들 같으면 하루면 할 수 있는 일을 난 거의 보름이 다 되어가도록

자리만 지키며 도데체 어떻게 해야하는지 고민만 하면서

입안은 바짝바짝 말라갔고,얼굴은 검게 야위어 갔습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원래 처음 입사하면 선배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손 댈 수 없는 일이었다는데...

자존심 하나만큼은 곧죽어도 좋을만큼 강했던 내가 도움을 요청하는 일 또한 죽기보다 싫은 일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선배들이 하는 일을 어깨너머로 보면서 습득한 방식으로 처음 받은 일을 어쨋든 마쳤습니다.

나름 내가 보기에는 만족스럽기까지 했기에

몇 번 더 훑어 보다가 제출을 했습니다.

 

출근해보니...

여지없이 리테이크(수정,또는 노굿,재작화)가 내 책상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억이 정확하지는 않지만,

열번 이상을 재작화를 했지만,번번히 리테이크를 당했고,

결국,난 내 컷을 체크하던 작감님에게 불려가게 되었습니다.

 

냉혹하기로 소문난 '유작감'님이 이상하게 내게는 부드럽게 대하면서 의자까지 권하면서 앉으라더군요.

난 거기서 순간적이지만 또 한번의 착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내심'드디어 나의 천재성을 알아 본 모양인데...그럼 그렇지....'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는 내 인생에서 가장 참담한 순간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아직 학교에 재학중인걸로 알고 있는데 맞나?'

"예!"

잠시 뜸을 들이던 유작감님의 다음말이 이어지는 순간 난 머리를 철퇴로 얻어 맞는 줄 알았습니다

"오해하지 말고 듣길 바라네...

아직은 많이 젊은 나이고 전공도 따로 있으니 하루라도 빨리 그만 두는게 나을것 같군!

이 일을 하기에는 재능이 너무 없는것 같으니!"

 

하늘 높은줄 모르고 의기양양해 하던 내 자존심,난 천재라고 각인된 자만심...

이 모든것들이 땅속으로 추락하면서 전신의 피도 함께 발밑으로 내려가는듯해서 현깃증까지 느꼈던 순간....그 충격...

 

작감실에서 풀이 죽어 나오고 있는 나를 바라보는 직원들의 시선을 애써 외면하며

잠깐 한강의 고수부지에 들려서 암담한 심정을 바람결에 맡긴 후

 

일에 필요한 스테인레스로 된 타프를 부러뜨리고 나서 짐을 싸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동료들에게 인사도 없이 막 떠나려고 하는데...

 

바로 그때 부드러운 손끝이 내 어깨에 느껴졌습니다.

이 블로그를 시작한 이래 가급적이면 피해 왔던 사람들의 실명이지만,

이 자리에서 그분의 이름을 딱 한번은 꼭 불러 보고 싶습니다.

 

'신미경'씨...

내가 입사하기 3년전에 입사한 대 선배이며 이미 베테랑의 대열에 오른 나보다 한 살이 어린 여자...

내 바로 왼쪽 책상이 자리였으며,

입사후 칸막이 때문도 그러하지만, 막막한 일때문에 신경을 써 보지 못한 내 옆짝쿵 '신미경'씨...

 

언제나 말이 없었으며,약간 조그만 키에 유난히 흰 우유빛 얼굴에 조금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큰 눈...

항상 작감이나 선배들로부터 일에 대한 칭찬은 물론, 다른 모든 면에서조차 칭찬을 독차지하던 22세의 여자...

 

그녀가 나의 어깨를 손가락 끝을 이용해서 옷자락을 살며시 잡아끌 때 까지만해도

난 챙피한것 말고는 그 어떤 생각마저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가 말하더군요.

"이왕 시작한거자나요, 딱 한 번만 더 해 보세요"

아무 대답도 못하고 우물쭈물 안절부절 서 있는 나를 못본체 외면하고

그녀는 방금 받아온 치욕의 리테이크 컷을 슬그머니 자신의 자리로 가져다 펼쳐 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아무말도 하지 않은 채

나를 대신해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서

그녀가 컷의 폴더를 곱게 포개서 내게 건네 주며 짧막한 한 마디를 했습니다.

"오늘은 그냥 들어가서 쉬시고 내일쯤 제출해 보세요"

 

지옥끝에서 구세주를 만났을 때가 그런 느낌일까요...

 

난 그녀가 시키는대로 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다시한번 그 작감님으로부터 호출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지옥에서 천상으로 오를듯한 칭찬을 들었습니다.

"이토록 발전 속도가 빠르다니...좀더 분발해서 훌륭한 에니메이터가 되도록..."

 

그제서야 난 세상에 빛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일이 있고나서, 비록 내가 내 손으로 그린 그림을 칭찬 받은것은 아니었지만,

그때부터 이상하리만치 자신감이 생기면서 나 자신도 이해가 되지 않을만큼

일에 대한 처리 능력이 가속화 되기 시작했습니다.

 

일에 필요한 기술적인 노하우나 필요한 소스가 있을때마다

난 유일하게 그녀에게만 물어보면서 점점 상위권에 진입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날 이후로 난 그녀를 부를때 '신미경'씨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신선배님'이라고도 부르지 않았습니다.

'사부님'이라고 불렀습니다.

남들이 비웃든 말든 난 오로지 사부님이라고만 불렀습니다.

물론, 신미경씨가 그런 호칭에 대해서 많이 부담스러워 했고,

그냥 이름을 불러 달라고 부탁했지만,

언제나 난 그녀를 사부님을 대할때처럼 경건한 마음으로 존경심을 유지한 채 대했습니다.

 

그렇게 몇 개월 정도가 지났을 무렵...

난 신인중에 가장 많은 일을 한 기록을 수립하게 되었지만,

그녀는 유작감님이 새로이 창업한 회사로 옮겨가게 되었습니다.

 

그녀야말로 사부가 바로 '유작감'이었기 때문에 조금 위험부담이 있는 신설 회사였지만,

의리상 그 작감님이 창업한 회사를 택했던것 같습니다.

 

그녀가 가끔 내게 물은적이 있습니다.

'애인도 없으세요? 왜 토요일과 일요일에도 집에 가지 않고 일만 하나요?"

난 그럴때마다 나도 모르게 항상 거짓으로 대답했습니다.

'애인이 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왜 그런 대답을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그건 나 자신도 모르는 나의 모습, 나의 마음일꺼라고만 어렴풋이 추측할 따름입니다.

하지만,

어쩌면, 나는 그녀를 너무 사랑했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녀가 옆자리에 있었기 때문에 능력 이상의 능력이 나올때가 종종 있었고,

내가 최고가 되고 싶었던것도 그녀에게 나를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었을테니...

 

그녀가 떠나기전에...

내가 일하던 자리에 노란 간지를 얹고 낙서처럼 적어 놓았던 글씨...

"XX씨...열심히 일해서 훌륭한 감독이 되세요...

 

난 수년동안 그 글씨가 적혀 있는 노란 간지를 오려서 지갑에 넣고 다녔습니다.

종이가 닳아서 가루가 될때까지...

 

그리고,

남들보다는  빠르게 작품 감독이 되었습니다.

(디즈니 레이아웃 총감독은 국내최초,최연소)

 

지금도 그녀에게 찾아가 감사의 인사를 드리고 싶지만,그럴수가 없습니다.

그녀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니까요.

 

다만, 몇 해전에 그녀의 단짝이었던 '숙희'라는 선배를 우연히 만났었는데...

그녀로부터 소식을 들었습니다.

 

아직 결혼을 하지 않았으며 ...이미 아주 오래전에 미국 LA로 이주해 갔는데...

'한인개척교회'에서 자선 사업을 하고 있다 하더군요.

내가 이 나이 먹도록 살아 오면서

그다지 자랑할만한 대단한것들을 이룬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전 세계의 어린이들이 보면서 꿈과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작품들에

이름을 남길 수 있게 된것...

 

따지고 보면 그녀...나의 은인 '신미경'"씨가 내밀어 준 구원의 손길 덕이었습니다.

그녀의 옆자리에서 일하며 신나게 질문하고 ,끝난것을 자랑삼아 보여주던 그 무렵...

 

빈 자리의 책상에 놓여있던 그녀의 워크맨 해드폰에서

모기소리만하게 음악이 새어나오고 있었는데...

호기심에 나의 귀에 꽂았을 때 신비스럽게 흐르던 곡...

 

이 포스팅에 함께 담은  Alan Parsons Project Time이었습니다.

 

내가 지금만큼이라도 몸담아 온 직장에서 작은것이라도 이룰 수 있게 해준 고마운 사람...

신미경씨를 생각하면서 담아 본 포스팅입니다.

그녀에게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번 감사의 마음을 전해 봅니다.

볼수도 들을 수도 없겠지만,

그렇게 감사하면서 살아 갈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