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보다 낯선 사랑/♧나의 인생 메모

은희/이별이라 말하지 마오 ㅣ추억 할 수 있는 곡을 많이 부른 추억의 가수...

Blue 탁이 2015. 8. 30. 08:22

이별이라 말하지 마오/은희

위의 가사가 실린 이미지는 어느 까페에선가
들렸다가 드래그가 허용되길래 퍼온 것인데... 
이미지가 예뻐서 새로 만들지 않고 그대로 사용합니다.
  
ps~함께 했던 은희씨의 일상에 대한 영상은 일단 삭제했습니다.
운영체제를 실버라이트(마이크로 소프트 Silverlight)를 필요로 하는
영상은 대체로 인터넷을 느리게 하거나, 사양이 낮은 컴의 성능을 더욱 저하 시키는
요인이 되는것 같아서...실버라이트 운영체제의 플레이어나 영상은
가능한선에서 모두 배제할 계획입니다.


오랜 세월이 흘러갔어도...
내게는 잊을 수 없는 곡이 되었습니다.
 
곡이 좋다 나쁘다,노래를 잘한다 못한다...를 떠나서 
내게는 너무나 강하게 각인된 그리움과 사랑의 기억을 심어준 곡이기에...
맨 아랫칸에 이 곡에 얽힌 러브 스토리를 이어 가겠습니다 
 
 
잊을 수 없는 사람...
 
처음으로 부모님의 곁을 떠나 외로운 자취 생활을 했던 때가
고교 진학을 위해 대전에서 자취 생활을 시작했을 때인데...
같은 반 친구의 권유로 잠시지만 '원불교'에 다닌적이 있습니다.
원래는 가족 전체가 이렇다 저렇다 하는 잡음없이
조계종 불교로 통일된 종교 이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당시만해도 절에 가려면 꼭 산에까지 찾아 올라가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음으로 간단한 예불조차도 쉽지가 않았을 때인데...
원불교의 사찰은 주택가나 시가지 어디든 장소를 가리지않고 뿌리를 내리던 때라
조금은 더 수월하게 인연을 맺을 수가 있었습니다.
 
절에가면 번들거리는 중대가리들에만 익숙해 져 있다가
검은색 한복을 입은 법사가 조금 낯설긴 했지만,
대학생이었던 형들과 누나들의 친절한 웃음이
곧 익숙하게 해주었습니다.
 
첫날...자신에 대한 소개를 간단히 하는 코스가 있었는데...
지금은 아무리 떠 올려 보려해도 내가 무슨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앞서 자신을 소개한 내 친구에 비해서 떠나갈듯이 박수를 받았던건 확실히 기억합니다.
평소에는 말이 없는 편이었지만,
아무래도 전국대회 출전 경험이 있는 연사답게 특별하게 보일만한
뭔가의 코멘트를 보여 주었었나 봅니다.
 
그날 이후로 난 특히 누나들에게 인기를 독차지 했던것 같은데...
 
그중에서도 잊을 수 없는 한 사람...
 
XX대 법학과 3학년...
고2였던 나보다 네 살이 많았던
이 경X 누나...
 
멋을 부리기에는 아직 모든 여건이 따라 주지 않았던
가난한 자취생이었던 내가 유일하게 멋지게 보일 수 있는 방법은
검정 교복위에 베이지색 파커를 걸치는것 뿐이었었는데...
 
그 누나는 내게 옷 선물을 자주 해 주곤 했지요...
시장 리어커에서 2000원짜리 라운드 티마저 망설여야 했던 내가
어느날 몇 만원짜리 '조다쉬'를 입게 될 줄이야...
 
특히, 그 누나는 자신이 입었던 청바지를 줄 때도 있었는데...
리바이스 501...
 
그 시절은...제임스 딘의 바람을 타고 청바지의 인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을 때였는데...
어느정도로 청바지의 인기가 좋았는지...
아는 급우중에 한 명은 청바지를 
엄마가 사주지 않자 가출을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런 꿈의 청바지를  그 누나 덕에 내것으로 만들 수가 있었는데...
당시로서는 174센티미터란 키가 고2치고는
그래도 큰 축에 들었지만,경애누나의 키가 169였고,
또한 워낙에 롱다리라서 내게는 딱 맞았고
알맞게 미리 길을 들여 놓은 덕에
발색도 멋지게 된 리바이스 501......
 
그 청바지를 입고 어느날 토요일에 둘이서
동학사로 일정을 잡아 놀러 가게 되었습니다.
난 지금도 그렇지만,데이트 할때 리드를 못하는 편입니다.
그랬기에 무조건 하자는 대로 시키는 대로 따라서 했을 뿐이었고,
가장 중요한 돈이 없을 때라서
그 누나에게 모든걸 맡기고 의존할 수 밖에 없었지요.
 
동학사에서 갑사로 가는 길에 등산로 주위로
클로바가 파랗게 밀림을 이루고 있었는데...
내가 그 누나에게 해 줄 수 있는거라곤 고작... 
상태가 좋은 클로바 꽃을 가려 뽑아
시계를 만들어 팔목에 채워 주는 일...
 팔목에 시계꽃의 줄기를 묶을 때...
미세하게 떨리던 그녀의 새하얀 손...
 
묶다말고 느낌이 이상해서 올려다보니...
커다란 눈망울에 배어있는 그녀의 미소...
난 그대로 죽어도 좋을 만큼 행복했습니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연인이 있었습니다.
너무나 가슴이 아프지만...운
명이란 그 누구도 장담 할 수 없는 것이라서...
유부남을 사귀고 있었던 거지요.
대전 지방법원 옆건물 어디쯤...
직업이 변호사로 알고 있는데...
 
그 사실을 알고부터 난 가슴앓이를 해야만 했었습니다.
지금 같다면야 까짓거 이쁜 누나니까
나도 사귀고 변호사 아저씨도 사귄들 무슨 상관이랴 쉽겠지만,
십대 사춘기의 내가 감당하기에는 많이 버겨웠습니다.

 그후 몇 년이 지나 나는 공부를 위해 서울로 올라와야했고,
그 누나와는 그 후로 만나지를 못했습니다. 
해병대를 전역한 해가 1986년 3월...
같은 해 8월에 바로 손위 누나를 통하여
그 누나의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누나와도 다리건너 건너 알게 되었나 보지만,
나중에 앞뒤를 짜맞춰보니 나의 누나인것을 알고
그 누나가 먼저 접근해서 친해진것 같아요.
 
사랑했던 누나의 결혼식장...
정말 가기 싫었지만, 또 가서 보고 싶었습니다.
남편 될 사람의 얼굴을 볼 생각을 하니
괜히 가슴이 뛰고 죄책감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그 누나와 나는 이미...
이미...깊은 우정을 나눈 사이였거든요.
 
임신 6개월이라 했는데...
남편 될 사람은 원래 사귀던 그 사람이 아니고
전혀 다른 사람이더군요.
지금도 기억나요.
누나보다 여덟살이 연상이라고 했는데...
불룩 나온 배에 중년티가 벌써부터 많이 풍기는 남자...
 하지만, 어딘지 모르게 있어 보이는 풍채....... 
 
경X누나가 웨딩 드레스를 입은 채
주례를 마치고 돌아 섰을 때
찰라지만 나의 눈과 마주쳤을 때...
나는 그제서야 내 여자가 아님을 실감하게 되었습니다. 
억장이 무너졌지만, 어느순간 후련해 지는 그 느낌...
 
아주 짧은 순간이었지만,
나를 바라보며 그 누나가 혀를 쭉 내밀어 보이더군요.
나는 묵례 하듯이 가볍게 답하고 나서 식사는 생략하고
서울행 고속 버스에 올랐습니다.
 
그로부터 수 십년이 지난 2010년 가을...
 누나를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비인기 타임에 방영되었던  허접한 TV 프로에
약 8개월동안 나의 이름이 자막으로 오른적이 있었는데...
그걸 봤던 모양이었습니다.
아니면 나를 아는 누군가가 얘기해 줬거나...
여튼 그걸보고 나를 수소문해서 찾아 왔습니다.
 
회사에서 멀지 않은 먹자 골목이 구로역 근처에 있었는데...
그곳에서 고기와 산사춘을 두 어병 마시고,
둘이서 노래방에 들렸읍니다.
 
그녀는...내가 노래 부르는 것을 듣는걸 좋아하더군요.
계속해서 이거해봐라 저거해봐라 선곡만 해주다가
나의 항변에 할 수 없이 마이크를 들었는데...
 
그때 그 누나가 부른 곡이 바로 이 곡...
'은희의 꽃반지 끼고..."였습니다.
 
...............................................
부르면서 많이 울더군요. 웃으면서 울더군요.........
 
난 왜 우느냐고 묻지 않았지만,
물어도 대답할 누나의 성격이 아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거역할 수 없는 세월에 떠밀려 떠밀려서 여기 까지 왔는데...
나이보다 젊게 보이는것은 아니었지만,
내가 사랑했던 그녀의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그 어떤 장해가 있다해도
그날밤 두 사람을 막을 수는 없었을 테지만
두 사람은 긴긴밤을 너무나 짧게 보내고
다시 헤어져야 했습니다.
 
나와는 너무나 잘맞는 경X 누나...
하지만, 난
그녀의 성격을 많이 간파하고 있는 편입니다.
난 알고 있습니다.
 
이제 ...다시는, 두 번 다시는 나를 찾아 오지 않으리란걸...
그게 내가 사랑했던 누나의 본래 모습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