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팅에 한 번 사용한 영상이지만, 다시 한 번 더 올리고 싶어서 준비했습니다.
왠일인지 집중력이 흐려져서 일도 잘 안되고...이럴때 술이라도 마시면 좋겠지만,
술은 이미 끊어버린지 일년 모자라는 이십년째라 그날그날의 감정의 기복으로 인해
혼자서 술마시는 그림은 있을 수 없는 일이고,그래서 포스팅에 매달려 봅니다.
먼젓번에는 저작권에 대한 문제를 너무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음악보다는 에니메이션쪽에 비중을 두고
제목을 정했었고,카테고리도 뮤직 스토리를 선택해서 올렸었지만,
오늘은 나의 인생이야기에 올릴까 생각중입니다.
영상은 사무라이 활극액션에 속하는 일본의 유명한 극장용 에니메이션
'수병위인풍첩'or 무사 쥬베이"라고 하는
영상에서 비교적 잔잔하고 칼부림이 없는 장면을 편집했고,
음악으로는 김인배님의 트럼펫 연주
'마이러브'와 후반부는 한성민의 사랑하면 할수록'인데
한성민씨곡은 비극적인 사랑의 아픔을 다룬
국내영화 '클래식'의 삽입곡이기도 했지요.
하지만 오늘에 다루고 싶은 음악의 에피소드는
김인배 선생님의 내사랑(My Love)입니다.
소스를 끌어오는중에 뭐라 적었었나 내용을 대충 훑어보니...
정작 쓰고 싶은말은 쏙 빼먹고 지나갔더군요.
쓸데없이 컴의 하드웨어에 대한 잡담만 가득 늘어 놓았더군요.
하지만,오늘은 이 음악에 담긴 사연을 옮겨 볼까 합니다.
음악이란건 글과 마찬가지로 강력한 메세지 전달의 힘이 있습니다.
어쩌면 글이나 말보다도 더 강렬한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숨어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우열을 가리기 힘든 두 힘의 균형이 한데 어우러져서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면
정말 헤어나기 힘든 감성의 압박감에 시달리는 경우가 있습니다.
물론, 그런 경우보다는 기쁨과 즐거움을,
혹은 행복의 포만감을 주는 경우가 많겠지만,
하나의 과정 단계에서 본다면 쓰디쓴 고행의 멍에를
스스로 쓰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실례로,
2008년도에 어떤 여성 시제이에게 별다른 사연없이
세 곡의 청곡을 올린적이 있었는데...
아직도 기억납니다.
'임재범의 너를 위해,조관우의 예정된 이별,플라워의 굿바이' 순서였을거에요.
멘트없이 음악으로 넘어가더니...
잠시후에 문자가 오기 시작하는데...울고불고 난리도 아니더군요.
(그당시 친했던 동생이라...
방장을 포함해 유일하게 폰번호를 알고있는 CJ였음)
꼭 그런 예가 아니더라도 음악은 경우에 따라서는
글보다 몇 배는 강한 메세지 전달의 역활을 해내기도 합니다.
2000년에 대한 기대나 상상이 컸지만
달라진거라곤,컴사양이 좋아졌다는거,
그리고 윈도우98에서 밀레니엄 에디션과 윈도우2000이
출시된것 말고는 지구상에 새로운 역사가
생겨나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2000년도가 되면서 나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많은 것들이 바뀌고 달라졌습니다.
일단 체팅의 종지부를 찍었고,
새로이 다가오는 디지탈 문화에 대응해서
새로운 공부를 해야만 했었는데...
그 체팅의 종지부를 찍게 될 무렵
어느 여성 시제이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사연을 올리면서
신청했던 곡중에 한 곡이 김인배님의 My Love였습니다.
내용을 정확히 기억하진 못하지만,
사랑을 이루지못한 어느 비련의 남자가
다른 사람과 결혼한 여자를 위해 죽어서
수호천사가 되어 어쩌구하는...
그 당시에 메일로 꽤나 퍼져있던 에피소드였는데...
나는 모르고 있었지만,
그 여성 시제이에게는 자신이 처해있는
비련의 고통과 맞물렸었나봅니다.
중간에 방송이 끊어지고....
아뭏든 난리가 났었지요.
그 이후에 자꾸만 나를 찾더군요.
방송으로,사연으로,까페에서도...
고통받는 사람이 나를 찾고 부르는 느낌이란...
그 역시 직접 체험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가져 볼 수 없는 이상 야릇하고
버티기 힘든 마음의 부담입니다.
그일을 겪고 난 후 난 심각하거나 무겁거나
진지한 사연을 올릴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김인배님의 마이러브는 그 이후 마음으로부터 사장 시키고
정말 오래도록 세상에 드러나지 않도록
정말 많이도 참아왔던 곡입니다.
2008년도에 딱 만으로 8년만에
왠지 범죄의 현장 같아서 외면하고 살았던
그 체팅 사이트를 들어가기위해
오랫동안 잠들어 있던 아이디를 찾아 로그인을 하고 말았습니다.
직장생활을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남아 도는 시간때문에 심심할 정도로
무료한 생활을 할 때가 그때였었는데,
회사의 시스템과 맞지 않는 쟝르의 일을 맡아 하게된
한 회사로부터 지원 요청을 받고 근무하는 중이라서
컨셉 정도만 캐취해주면 나머지 시간은
할일없이 회사에서 여기저기 찔르고
다니면서 빈둥거리는게 일이었으므로
당연 일상이 따분해 질 수 밖에 없었겠지요.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체팅을 해 보는 거였지요.
이제는 되겠지...괜찮겠지...
그때보다는 나이도 많이 먹었으니까...
그냥,스트레스나 풀고 시간만 때우면 괜찮지 않을까...
나만 조심하고 매사를 철저히 관리하면 아마 괜찮을거야...
내가 이런 걱정을 하는데는 수 년전에 겪었던
체팅의 악몽 때문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잘못은 분별없는 내게 있었겠지만...
사람과 사람사이의 미묘한 감정들이 정리되지 못하고
함께 하면서 쌓여온 그 감정들이 한참 폭주할 무렵에
도망치듯 빠져 나온 곳이기에
혹시나,
그때의 사람들을 다시 만나게 되는건 아닌가 하는
걱정이 앞섰던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묻어버린건 나였을 뿐
2009년도에 인기 여성 CJ 고요님이 멘트의 배경 음악으로
사용되는것이 한 두번 목격 되나 싶었는데
다행히 그 이후에는 별로 들어 보지를 못한것 같습니다.
자라보고 놀란 가슴 솥뚜껑 보구도 놀란다고
괜히 아무것도 아닌것 가지고 혼자 풀죽고 기죽어서
몸사려 온 내 심사라니...쯔쯧~
그 이후에 약간의 갈등이 있었지만,
블로그에서는 처음으로 어느 아름다운 익명인이 올린
"사랑해,사랑해'란 자작글의 배경음악으로
삽입 시키게 되었습니다.
제목과 연주자를 적지 않고 플레이창도 없이 올렸는데...
그 이후 미국 교포로 계시는 "렌'님께서
어느날 문득 읽다보니 이 곡을 신청하셨더군요.
수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악을 나 혼자 숨기고 막는다는 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는 어리석음과 다를바가 없었겠지요
지금까지 나열한것이
내가 이 곡에 얽혀 있는 사연 아닌 사연입니다.
오래전에 탓발 하나로 사이트가 좁다 하고 활개를 치던 그때 그자리..
사실 재미있었고, 오히려 일도 능률적으로 잘 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음악과 함께 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던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보다도 좋았던건...
음악방송을 하는 사람들과 교감을 다시 갖게 되었다는것...
요즘도 나는 인터넷 방송을 비교적 즐겨 듣는 편인데...
잘 되길 바라는 마음이 항상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시대의 흐름이 그러할진데...
점차 수그러 드는 인터넷 방송의 현실을 보면서
많이 안타깝고,
그러면서도 계속 명맥을 유지해 주기를 바라는건,
내 기호에 맞는 음악을 못듣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운것 같지는 않습니다.
지인들과 공유하는 하드에는 이미 40만곡이 넘는
각양 각색의 음악들이 저장된지 오래지만...
어쩌면 나는...그날의 그 느낌을 알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네요.
방송을 시작할 무렵에 확인한 십여명의 리스너를 중반에 이르면서
수 백명으로 올렸을때의 그 희열은 정말...
방송을 해 본 사람이 아니라면 이해하기 힘든 감정이겠지요.
난 주로...음담패설로 리스너를 올렸었지만...
시제이들의 심리적 부담이나 그들이 원하는것이 무엇인지를
난 무엇보다 초창기 인터넷 방송때
몸으로 체험했기 때문에 조금은 안다 할 수 있었지요.
하지만 그래서였을까요...
체팅을 다시 시작한지 한 두달 지났을 무렵 ...
어느덧 난...
각자 다른 시제이 성향에 맞추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방송하는 사람들에게
무언의 피디와 작가가 되어가고 있더군요.
하지만,이제는 누구도 나의 이름(대명)을 부를 수 없도록
조취를 취했습니다
성공했나 싶었습니다.
그 당시가 지금보다는 많이 젊었었다해도 사십대 중반에 이르는
중년에서 장년으로 넘어갈 때였었는데...
그런 불혹의 나이가 되어가는 나을 찾고
불러 줄 사람도 없겠으려니와
설령 부르려해도 부를 만한 이름이 없는
유령이 되어버렸으니...
하지만 왠걸...2008년도의 명절였던 추석 팔월 한가위...
그때까지만 해도 명절이면 시골에서 몇 일씩 보내다 왔었기 때문에
대화창에 항상 걸어 두었던 대명을 철수 시켜야만 했었는데...
서울에 와서 게시판을 확인해보니 누군가가 제목에
내 대명을 적고 큰소리로 불렀더군요.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만...'
산까치'님 왜 안오세요?
빨리 오세요 보고싶어요~~~~!!"
자신의 대명도 당당하게 밝히면서...
미국에 거주하는 아이더군요.
또 그 밑으로 한명이 따라서 나를 부른것이 보였습니다.
요즘은 대학에서 강의를 하고있는 교수하는 여자 아이였는데
둘사이에 친분이 있는지는 몰라도
같은 나이의 친구였었던걸로 기억합니다.
물론 나도 방송 초창기에는 그런 시절이 있었습니다.
신청곡을 올려 주며 여성 신청자가 올린 애틋한 사연에
가슴 뭉클했던 기억...
그리고,내가 신청한 사연을 읽으면서
"이 주인공이 나였으면 얼마나 좋을까요"라고 애드립을 하는
여성 시제이의 멘트에 괜스레 가슴뛰고 설레이던 기억...
하지만, 이제는 마음이 세월의 무게만큼 정순해지고
온라인 만남의 생리를 이미 잘 알고 있었기에
크게 동요되진 않았었지만,
그런 생각은 했지요.
뭔지는 몰라도 나의 힘이 필요하니까 불렀겠지...
그렇다면...
내가 할수 있는 나만의 방법으로 너의 힘이 되어주지...
하지만,이것이 또 옛날의 전철을 되밟게 되는 시작점이 될 줄은...
그 후의 일들은 개인적인 프라이버시에 해당됨으로 생략합니다.
그런 일을 겪은 후로 나는 좀 더 철저히 나를 숨기고 위장을 해야 했습니다.
이제는 그 누구도 나를 찾지 않고 부르지 않도록...아니,그럴리야 없겠지만,
설령, 부르려 해도 부를 수 있는 이름이 남아 있지 않도록...그 방법은 오직 하나...
음지에서 나를 전혀 드러내지 않고 그냥 듣고 나혼자 즐기면 된다는 사실...
그래서,
그 이후로는 신청곡을 올린적도 사연을 올린적도 한 번도 없습니다.
요즘은 그냥,다른 님들이 올린 사연 읽어보고,
신청곡 함께 듣고...지금이 딱 좋은것 같아요.
...
그래도,항상, 무언으로도 생각을 읽을 수 있었던 사람,
내 생각을 읽혔던 사람...
세월이 한참 지난후에...조금 멀리서 바라보는 그리움의 조각들은
언젠가는 하나씩 사라져 가겠지만,
지워가야겠지만...
또, 원튼 원치 안튼 새로운 기억을 받아 들이며
살아가야 겠지만,내 의식이 흐려져서
아무것도 기억 할 수 없는 그 순간까지
기억의 강철 사슬에 억지로 묶어서라도
간직하고 싶은 오직 단 한 사람...
그게 바로...너야~!!!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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