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움보다 낯선 사랑/♥아름다운 동행

저공비행 / 장석주 | 황사가 쓸고간 자리...ㅣKoop - Koop Island Blues (Official)

Blue 탁이 2014. 4. 27. 02:45

 

 

저공비행  /장석주

 


황사가 덮친 뒤
지붕들은 실의에 빠졌다.

먼산들은 조금 더 멀어지고
먼 바다에는 파랑주의보가 내려진다.

 

실의는 너희들 것이 아냐.
꽃을 비싸게 팔아 보려는 자들의 것.

태양계에서 명왕성이 퇴출당하고
새 정부가 들어서며 국정원장은 바뀌고
우주선에 탑승할 한국인도
이소연씨로 교체 되었다.

 

코트를 벗는데 단추가 떨어진다.

무심코 마당 한 귀에
떨어져 있는 새똥들.
작년의 새들은 오지 않고
수 천년을 흐르던 물길이
바뀌리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흐름을 바꾸려는 자들이 돌아온다.

나는 강까지 걷던 습관을 버렸다.

 

옆집에서 며느리가 아이를 낳은 모양이다.

아기들은 습관의 동물들이다.
배고프면 울고
기저귀가 축축해지면 또 운다.
목욕과 이야기와 젖만이
그 울음을 달랜다.
모든 습관은 무섭다.

 

모란꽃이 피는 이 세상은
태어나는 자들과 죽은 자들이
임무를 교대 하는 곳,
기일(忌日)들은 언제나 빨리 돌아오고
기일을 남긴자들은 서둘러 잊힌다.

 

어제는 아버지 일곱 번째 기일이었다.
나는 기일에 납골당을 가는 대신에
아버지가 말년을 보낸 성북동엘 다녀왔다.

옛 성곽 아래 가파른 골목길을 오르며
남의 집 마당을 들여다 보고
빨랫줄에 걸린 빨래들이 잘 마르는가를 염려했다.

 

기일 저녁에는 면도를 하고
정종 파는 집에 가서 정종 석 잔을 마셨다.

동생들은 연락이 없고
내 슬픔은 미적지근했다.

 

미국 경기 침체가 본격화 하리라는 소식에
어제 코스닥은 맥을 못 추고 급락했다.

페놀이 섞인 강물에서 죽은 고기들이 뜨고,
대운하로 한몫 챙기려는 자들이
사업 구상에 골몰하는 이 밤,

 

빈 깡통을 차서 어둠 저쪽으로 날렸다.

깡통에 맞고 어둠 한쪽이 일그러진다.

판자들은 삭고 판자에 박힌 못들은
붉은 땀을 흘리며 세월을 견딘다.

 

조카 딸년과 당신과 사철 나무는 푸르고,
이쁜 것들은 다 푸르다.

나는 뻔번한 자들과 연루 되었다.

용서하는 자가 아니라
용서 받아야 할 자다.

푸른 것들만 무죄다.
푸른 것들의 계보에 속하는
당신 속에는 암초와 법칙들이 자라난다.

나를 용서 할 수 없기 때문에
당신을 사랑 할 수 없다.

 

매화와 산수유가 찬바람 속에서
꽃눈을 준비하는데
황사로 개화는 며칠 더 늦춰진다.
기어코 조카애의 초경이 터진다.

 

-장석주 시집<몽해항로>중에서-

 

<알페지오님이 올린 장석주 님의 주옥같은 詩>

 

 

어쩌면 한 번쯤은 읽어 봤을지도 모를 좋은 글들과 시입니다.
하지만, 책장에 헤아릴 수조차 없이 빽빽이 꽂혀있는 

책들을 바라보면서도 빼어들 인연을 습관 속에 뒤로 뒤로 미루며 

영혼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아오는 동안에 

종이 썩는 냄새에 섞여 사라져 가는 
그들의 안타까운 소리를 듣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다른 어느 누군가의 고심과 분별력으로 올려진 

한 편의 시들이 굳게 닫혔던 책 표지를 열어 

숨통을 열어주고 있습니다.

어쩌면 나의 책장에는 너무나 많은 책들이 

잠들고 있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언제부턴가부터는 글이 고파져도 

시간이 없다, 바쁘다 등의 스스로 작성한 핑계 문서들을 

위안 삼아 정말 멀리하고 살아왔던 것도 같습니다.

팽팽하게 균형을 유지한 저울에 놓인 작은 저울추 하나...
그것이 경직된 사고에 균열을 일으켜 깨 버릴 수가 있는 것이라면 
그 또한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천근 바위로  짓눌리는듯한 압슬의 고통과 

핏물 엉긴 시리고 아픈 가슴으로 맞이해야 했던 4월의 예쁜 꽃들이 

그들보다 더 붉은 핏빛 사연에 얼룩지는 동안
아무도 모르게 뒷걸음질로 조용히 사라져 가 버렸습니다.

결국, 또 이렇게 무기력한 빈손 짓으로 맞이 해야 할 5월....
그 5월에 무슨 희망이라도 있나 기웃거리며 살아가는 난 

그래도 삶이 아름답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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