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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서시)/윤동주ㅣCJ 고요 박애경(2가지 버전 낭송)ㅣ절대적 양심과 수난의 길(이건청 교수)

Blue 탁이 2020. 7. 9. 20:53

 

2018 01 17 저녁 윤동주 님의 서시 낭송/CJ 고요 박애경

 

 

 

윤동주

 

서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 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시인세계
2013년 8월 11일 ·
● 평론가가 선정한 '10명의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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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절대적 양심과 수난의 길 ― 이건청/ 시인·한양대 교수

 

 

윤동주의 시 「서시」는 그가 연희전문 졸업을 계기로 18편의 시를 묶어 펴내기로 했던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의 일부로 써진 것이지만,

그의 사후인 1948년에 이 시집이 빛을 보게 되면서

시집의 첫 번째 시로 실렸다.

시의 제목이 「서시」인 것은 이 시가 시집의 '서문'의 성격으로 씌어진

시이기 때문이다.

'서문'은 글쓴이가 자신의 글에 대해 가지는 태도나 입장을 표명하는 글이다.

그러므로, 윤동주의 시 「서시」에는 시인으로서의 자신이

시에 대해 가지는 태도나 입장,

시인관이나 인생관 같은 것들이 시 속에 천명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시의 1행과 2행에는 그의 삶의 태도가 천명되어 있다. 윤동주가

그의 시 속에 천명하고 있는 삶의 태도는 가장 높고 고귀한 절대적 양심의 세계이다.

하늘 앞에 '한 점 부끄럼도 없기를' 간구하는 이 시의 화자는

스스로 험난한 형극의 길을 골라 딛고 있다.

사람이 현실 속에서 살아가면서 '하늘' 앞에 '한 점'의 부끄럼도 없이 산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이다.

'하늘'은 절대적인 가치이고 그런 '하늘'의 절대성에 부합되는 삶을

인간인 윤동주가 이뤄낼 수는 없겠기에 말이다.

더구나, '죽는 날까지' 일관되게 그런 삶을 살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다.

 

 

대개의 경우 사람이 이상을 설정하고 꿈꾸는 것은 보편적 현상이기는 하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이 현실 여건 속에 살아가면서 자신이 설정한

이상의 높이를 적절하게 재조정한다. 현실에 안주하거나 타협해버리는 것이다.

만약, 사람이 애초에 설정한 이상의 높이를 고집스럽게 관철하려 한다면

그 사람은 상당한 시련을 감내할 용기를 지니지 않으면 안 된다.

윤동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간구한 그는

삶의 목표를 수정하거나 포기하지 않은 채,

고집스레 애초의 신념을 견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윤동주는 스스로 힘들고 험한 수난의 길로

자신을 몰아가고 있는 셈이며,

역부족이어서 목표치에 도달할 수 없는 자신을

끊임없이 '부끄러워'하고 '죄스러워'하며 끝내는

'죽음'의 백골이 되어 풍화되어 간다.

 

 

그런데, 3행과 4행을 보면 이 시의 화자가 아주 서정적인 사람임을 알 수 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보면서도 괴로워하는 섬세한 감성의 소유자인 것이다.

'바람'이라는 타율적 힘에 소리 없이 흔들리는 나뭇잎을 수난의 존재로 파악하고,

그것을 괴로워하고 있는 것이다.

절대적 양심과 순정한 삶을 추구해가면서 현실의 폭압을 견디는 이 자아는

그가 섬세하고 서정적인 사람이기 때문에 도리없이

더 많은 수난과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수난과 상처의 시적 자아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의 구현자로 존재해야 한다는 자각을 갖는다.

5,6행에서 그런 점을 볼 수 있다.

7,8 행에서 시인은 자신의 '길'을 걸어갈 것을 다짐해 보여준다.

마지막 행은 그가 인식한 자신의 모습이다.

스쳐가는 바람 속에 떠서 제 빛을 잃지 않고 반짝이는 별,

그것은 수난의 상처를 입고도 자신이 설장한 삶의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 분투하는 시적 자아의 인식된 존재이다.

 

 

윤동주의 시 중에서도 높은 시적 성취를 얻어내고 있는

시편들은, 이처럼, 그가 천명한 절대적 양심과 현실적 삶의 편차 속에서

괴로워하는 삶을 다루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강한 정신적 긴장을 띠고 있다.

윤동주는 '가혹한 삶' 속으로 자신을 채찍질해가고 있으며,

거기서 무섭도록 투명한 '백골'의 시적 긴장들과 조우하고 있는 것이다.

윤동주의 「서시」는 그런 그의 시인관을 선언처럼 담아내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양대 교수 '이건청' 시인의 페이스북에서 담아온 글>

 

 


 

3년 만인지 4년 만인지 확인해보진 않았지만,

인터넷 자키의 시낭송과 추천곡들을 레코딩으로 캡처 해서

고운 블친님의 블로그에서 담아온 이미지와 

그동안 내가 만든 이미지들을 혼합해서 

만들어 본 영상입니다.

 

참, 재밌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시를 다른 사람을 통하여 

낭송을 듣는 것이 재밌고 즐겁습니다.

물론, 맘에 드는 낭송을 했을 때에 국한되겠지만,

 

이번을 기화로 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짬짬이 

시제이님들 위주로 음악과 CJ 내레이션을 편집하여

영상을 만들어 올릴 예정입니다.

 

설명을 굳이 길게 할 필요가 없는 

하늘사랑의 만능 베테랑 CJ 고요 박애경'님이

아무런 준비도 없이 불쑥 신청을 받아 낭송한 

윤동주'님의 서시'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조금 빠른 감이 있어서 

살짝 쫓기는듯한 인상을 받았습니다.

어떤 면에서는 그것이 긴장감으로 승화되어 

상승효과도 있었던 것 같고.

무쪼록 탁월한 역량의 인터넷 자키'가 낭송하는 

시와 음악을 함께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포스팅 역시 2018년 1월 26일에 작성했던 것이지만,

동영상은 전혀 다릅니다.

다시 제작한 것이니까요.

역시 글자가 안 보이는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어서

포스팅을 새것으로 둔갑시켜 올리게 되었지만,

애초에 계획도 낭송 영상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동영상을 만들 때 편집을 잘못하는 바람에

음질이 상당히 안 좋았고

낭송하는 음성이 좌우로 왔다 갔다 UFO 현상이 일었었기 때문이지요.

음질의 문제는 깨끗이 해결이 된듯합니다.

하지만,

서둘러서 만들었기 때문에 졸작이 되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고요 님은 목소리, 발음, 감정이입... 기타 등등의 모든 면에서

거의 완벽에 가까운 역량을 지닌 시제이자 방송인이지만,

성미가 좀 급한지 약간 빠른 감이 느껴집니다.

속된 말로 누가 쫓아가서 패줄 것도 아닌데...

그 부분만 보완한다면 전문 낭송인을 능가할 정도의 기량과 소질을

가졌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

 

 

 

진작에 만든 영상이지만,

오늘 박원순 서울 시장 실종 사건이 일어나는 바람에

철렁한 가슴을 쓸어내리며 뉴스에 집중하느라 

많이 늦어졌습니다.

솔직히 지금 글을 적으면서도 거실의 TV에만 온통 신경이 가네요.

제발 아무 일도 아니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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