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도종환
열정이 식은 뒤에도
사랑해야 하는 날들은 있다
벅찬 감동이 사라진 뒤에도
부둥켜안고 가야 할 사람이 있다
끓어오르던 체온을 식히며
고요히 눈 감기 시작하는 저녁 하늘로
쓸쓸히 날아가는 트럼펫 소리
사라진 것들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풀이란 풀 다 시들고
잎이란 잎 다 진 뒤에도
떠나야 할 길이 있고
이정표 잃은 뒤에도
찾아가야 할 땅이 있다
뜨겁던 날들은 다시 오지 않겠지만
거기서부터 또 시작해야 할 사랑이 있다
아내와 걷는 도림천이 즐거웠습니다.
무더운 한낮의 열기로 인해 내에서는 물비린내와 은은한 하수구 냄새마저 풍겨 올라왔고,
그늘을 드리워줄 가로수 한그루 제대로 서 있지 않은 곳이었지만,
그것도 낭만이라고 은박 돗자리를 깔고 소풍이라도 나온 사람들처럼
해맑은 수다를 입에 물고 먹거리를 즐기는 아낙네들의 모습이 참 행복해 보였습니다.
잠깐 티타임을 핑계 삼아 아내가 근무하는 회사 근처에서 전화를 했습니다.
갑자기 뭔 일인가 싶어 조금은 긴장한 얼굴로 달려 나오는 아내의 익숙한 표정을 보자마자
테이크 아웃에 들려 미리 준비해 놓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손에 쥐어 주며
무작정 향한 곳은 도림천...
어디서 지즐대는지 새소리가 귓가를 간지럽히고 별로 깊어 보이지 않는
수면을 스치는 날벌래들이 작은 동그라미를 그리는 평화로운 오후...
아내의 선한 눈망울에 태양이 들어가 밝게 부서지는데
한낮의 나른함이 더해져 더없이 사랑하고 싶었던 날...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느낌... 하지만 말로 듣고 싶었던 사랑 발림...
그렇게 하루해가 턱밑까지 내려앉고서야 몰래 포옹하다 들킨 연인들처럼
발갛게 상기된 얼굴로 도림천을 걸어 나오고 있을 때
내 손끝을 수줍게 잡았던 아내가 지긋이 힘을 가해 오고 있었습니다.
이 안정된 감미로움과 아늑한 행복감이란...
오직 내 아내만이 내게 줄 수 있는 것.
사랑의 듀엣 (조진원, 홍종임) - 사랑하는 사람아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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